재활용센터 뒷마당 폐기처리장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형태의 물건을 먼저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란…
누가 봐도 생소한 모습일 것 같다, 한국 도로공사의 직원이 아닌 이상.
익숙하지 않은 모습일 때 우리는 반발하거나 사랑에 빠진다. 처음엔 그럴만하다고 생각하지 편견에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시작되니까.
사랑까지는 아니었다. 호기심이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세상 수만 가지 것들과 사랑을 맺은 꼴이 되지 않겠나. 적당한 선에서 정리해 주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때도 있다.
고속도로 터널에서나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비상전화박스였다.
그 튼튼하고 깔끔한 스테인리스에 부식 페인트를 칠해서 세월을 입혀버렸다.
뭘까? 늙기 싫다며? 세월 가는 게 싫다며, 부식되는 게 서럽다더니…
시간과 부식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강제로라도 입혀서 말하려는 게 뭔가?
처음 만났던 그날의 사진 한 장이 없다. 혹시나 해서 사진 파일을 뒤져 봤지만 처음 젯소를 칠해 두었던 사진만 몇 컷 있다.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첫 만남 기념사진은 반드시 남겨 두는 것을 권한다. 아, 정말 그래야 했다. 누군가 완성된 이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 이게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면 감동도 덜 할 것이다. 목재나 종이 소재로 이런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만약 만들어진 형태로 보인다면 대수롭지 않은 수공예품이 될 것이다. 이 물건을 가장 잘 알아볼 도로공사 직원이 내 작품을 볼 확률은 몇 프로일까? 좀 놀라거나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멀쩡한 물건에 왜 그랬냐고…
버려졌었고 잠금장치에 문제가 좀 있었고…, 변명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그래도 알아보면 좋겠다. 알아보고 이렇게도 되는구나 해주는 게 즐거운 일이지.
글을 쓰려다가 사진이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볼 생각은 하지 못한 옛날 사람.
그나마 지금이라도 엇! 있겠다! 생각난 게 기특하긴 하다. 감상자가 이 사진을 본 다면 알아볼 것이고 내 작품을 먼저 봤다면 이게 뭐지 할 것이다.
쇼핑 검색을 통해 찾아낸 이미지 고속화 도로 터널에서 발견되어야 자연스러울 사물에 내 이야기를 담았다. 짜장면 배달통, 또는 중국집 옛날 배달통이 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스테인리스로 보였지만 아마도 알루미늄이었을 것 같다. 요즘 사용하는 플라스틱 재질은 별로다.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이 주는 강한 실용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귀하지도 천하지도 않지만 세련됨과 실용성을 갖춘 오래오래 버려지지 않아도 될 기본에 충실한 사물.
아무리 버려진 걸 주웠다 해도 분해하는 작업은 마음을 크게 먹고 시작해야 한다.
제거해도 되는 부분인지 살려야 할 부분인지 사물을 오래 바라보고 동의를 구해야 순조롭다.
그래서 작업은 더디고 때론 포기하게 된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결단을 내린 것도 정답은 아니었는데 고민이 너무 많았던 게 문제였다.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게 별로 없는 건데 말이다. 요즘에 와서 깨닫게 된 건 대충 해도 내 생각은 다 담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대충 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게 목표가 되었다.
대충 하더라도 차분하게 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만져대다가는 부서지기 십상이어서 나사 박힌 부분이 어디인지 잘 살펴 하나하나 기억하며 풀어 나간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분해가 되어 기분이 좋다. 나사를 풀어내니 아크릴 재질의 글씨가 적힌 부분이 쉽게 분리되고 조명을 만들기에 적합해 보인다. 전구가 설치되어 빛이 통과될 부분이 생겼고 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면 된다. 차가운 스테인리스에 부식 페인트를 칠하기 전 칠이 잘 붙도록 칼라 젯소를 먼저 칠했다. 젯소는 흰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칼라젯소도 있었다는 것을 이번 작업을 하면서 알았다. 그것도 강력 젯소라고 적혀 있어서 기대가 되더라. 칠해보니 다른 젯소에 비해 착 달라붙어서 벗겨짐이 덜하다. 스테인리스의 견고함은 그대로 잡아두고 멋스러운 외투를 입혀 본다. 부식페인트는 매력 있다. 철의 부식된 색과 거친 질감이 흙냄새를 풍긴다. 붉은 흙의 에너지가 철의 부식에서 느껴지는 건 색에서 갖는 선입견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선입견은 작품이라고 불린다.
대학시절에도 그림에 부식을 이용하기도 했었는데 그땐 부식페인트가 따로 없어서 철가루를 본드나 미술재료에 섞어서 그림에 붙인 뒤 소금물을 뿌려 녹슬게 만들었었다. 조소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조각에 사용하는 부식 방법을 물어보면서 작업했었다. 예전 방법보다 부식 페인트는 간편하고도 깔끔한 작업을 하게 해 준다. 고가라서 큰 작업을 할 때는 부담이 클 것 같긴 하다. 이 정도의 소품에는 제격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내부와 외부 사이의 공간 처리였다. 고민 끝에 찾은 결론, 눈에 들어 온건 거미줄이었다. 어지럽게 늘어놓은 작업실 한쪽에 꽤 대범하게 위치한 거미줄이 있다.
세월은 그때 만난 거미줄의 기억을 모노톤으로 변질시켰지만 추억은 더 성장했다. 거미가 없는 거미줄이 좋다. 그제야 거미줄 위에 시선을 얹고 줄타기를 해본다. 주인 없는 틈을 타 겁도 없이...
이때부터 많은 작업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거미줄은 어디든 잘 어울리고 쉽게 위장한다. 공간을 답답하게 막지 않고 투과시키면서도 연결 지어 주고 각자의 구역을 존중하게 한다. 낯선 삼각기둥의 좌우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조화를 이룬다. 왼쪽은 흰색의 거미줄, 오른쪽은 검은색의 거미줄을 배치했다.
거미줄을 엮은 실은 부식된 철재 느낌과 잘 어울리도록 매트한 제본실을 이용했다. 제본실 중에서도 실패 조명을 만들었던 블랙, 화이트 실이 단연 잘 어울려서 거미줄을 만들땐 저 실만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치열하지 않은 관계를 맺으면서도 줄은 이어지고
꽃이 피듯 먹잇감이 달려 있다.
아름다운 엮임이다.
내가 너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사냥을 하기 위해서만 거미줄을 치지는 않는다.
관계를 맺은 발자취이기도 하다.
저 아름다운 짜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