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한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 결과물이 나오면 다행이다.
또 시작이다. 잘하려고 하지는 말고 대충이라도 해내는데 의의를 두자고 다짐하며 사냥을 나간다.
책방을 꾸미는데 반드시 필요한 건 책 전시장과 책장인데 쉽게 하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목재를 주재로 설계도를 그리고 판재를 사이즈별로 잘라서 작업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뻔한 일에 에너지를 들여서 만드는 게 힘 빠지는 일이다. 사면 간단할걸 만들지 않는다. 사냥 시간은 짧고 쉽게 포기한다. 눈에 불을 켜도 배가 고픈 날엔 목표물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법. 어떡하지... 지금 필요한데.... 그러면서 시간은 간다.
이러다 결국 사는 건가...
며칠을 책방 자체를 하지 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지적하던 남편도 성향이 물들었는지 가끔 사냥감을 물고 들어온다.
"아랫집이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돌침대 프레임이 있는데 튼튼해 보이네. 내려가서 한번 보고와" 한다.
반신반의하며 슬쩍 내려가 본다.
헛! 물건이닷!
세 개의 덩어리가 앞으로 나란히 하며 예쁘게 인사한다.
남편은 그중에 한 개만 썼으면 했다. 너무 무거워서 가지고 올라가기 힘들고 맘에 안 들면 버리기도 힘들다는 이유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세 개 다 쓸 거야"했다. 세 개가 다 필요해. 그래야 모양이 나와. 한 개도 포기할 수 없어. 당장 옮기자.
불안했다. 이웃 어르신들이 기웃거리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얼른 옮기지 않으면 밤새 잠 못 잘 일이 생길게 뻔했다. 평상으로 쓰기에 좋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남편은 평소처럼 탐탁지 않아했지만 난 망설이지 않았다. 빨리 누구라도 불러서 옮기자.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게 있다.
마침 이런 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언니 뭐해?
퇴촌에 이사 와서 자주 듣는 멘트다. 어느 지역에서 살 때도 자주 듣지 못했던 다정한 언어.
남종면에 사는 은주가 놀러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사정을 얘기하니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 보자 한다. 은주의 남편이 흔쾌히 도와주어서 빨리 마무리가 되었다.
이 흥미로운 작업들은 참,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일이다. 웬만하면 혼자 해결해서 결과물만 보여주는 게 좋다. 물론 남편 포함이다. 그 누구도 채집의 단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는 적이 없었다. 그 별로인 반응에 작업의 열정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나의 판단을 믿으며 완성될 때까지 혼자만의 길을 걷는 게 현명하다. 나조차도 이게 될까 싶을 때도 많아서 작은 부정에도 흔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한치의 의문도 남지 않는 옳다는 판단이 들 때는 누구의 의견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실행했다. 다리만 자르자. 툭툭 걸리는 부분만 잘라냈다. 거구의 몸통이어서 다리도 튼튼했지만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정리해야 한다. 물론 최대한 살릴 부분은 남겨 두는 것도 중요하다. 일부러 만든 부분이 아닌 본래의 모습을 살렸을 때 생명감. 인간으로 치자면 자존감 정도로 해두면 되겠다.
샌딩을 한번 하고 칠을 할까도 했지만 거친 대로의 느낌을 살리는 걸로 결정.
다리를 잘라낸 부분만 샌딩하고 바로 진한 나무색의 스테인을 칠했다. 칠을 하는 이유는 오염을 쉽게 닦아내기 위함과 방충의 효과가 있어서다. 칠 또한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묵직한 브라운 칼라가 책방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한다. 오래오래 책방을 지켜내 주겠다는 다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