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갈게, 너에게
누굴 만날지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듯이 내 손에서 빚어진 스프링 트리 또한 그랬다.
몸이 기억하는 지난 생의 흔적이 자연스러운 곡선에 남아 있는 매트리스의 개별 스프링은 여러 개의 조명으로 만들어졌고 작은 트리로도 탄생했다.
누굴 만나지 않게 되더라도 이미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자리를 옮기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우리는 태어날 때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고독하진 않았을 텐데...
스프링 몇 개를 요리조리 겹치고 모아보다가 작은 트리 모양이 보였다.
욕심내지 말고 작은 모양을 먼저 만들어 보기로 한다. 모양새가 좋으면 크게도 만들어봐야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최소 단위의 트리로만 완성된 게 다다.
어쩌면 이게 최선일지도.
용접기라도 들고 나서면 모를까 마음 편히 작업하는 정도에서는 작은 작업이 에너지가 맞을 때가 있다.
부식된 투박한 못 몇 개,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 적당한 크기의 나무토막, 거기에 무게와 힘을 채워줄 맑은 소리를 내는 주물 종까지 약속하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스프링 몇 개에 초록색 락카를 뿌리고 그 위에 은색을 살짝 뿌려 준비했다.
모여준 사물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한다.
조명을 더하니 제법 분위기가 나서 각자의 비밀이라도 하나씩 털어놓게 되는 건 아닐까?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보스턴에 오래 살다 오셔서 보스턴댁이라 부르게 된 보스턴댁이 자녀분이 어릴 때 보스턴 바자회에서 구입했던 흰색 뜨개 오너먼트를 건네주셔서 트리에 달았더니 보스턴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얼마나 소중히 간직하셨던지 빳빳하게 풀까지 먹인 게 뽀얗게 그대로였다. 사실 이렇게 달아 놓아서 때가 타면 어쩌지 싶기도 하지만 상자에 모셔만 두는 것보단 시절을 함께 겪으며 변화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보스턴에서 왔다지만 어릴 때 할머니께서 풀 먹여 준비하셨던 옷가지들이 생각난다. 이렇게 귀한 추억을 주고 가신 것은 이 사물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리라.
이제 미제가 되는 건가?
그러기엔 플라잉 타이거에서 구입해서 송년회에 참석한 친구의 이름을 붙인 산타에게서 퇴촌 냄새가 난다.
참석했던 친구 몇은 각자 이름 붙은 산타를 떼어 가서 달려 있는 산타는 몇 개 안 된다. 물론 내가 떼어가라고 했다.
끝까지 떼어가지 않고 남겨 둔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겠다는 건가?
약속 없이 이루어지는 사물들의 모임이 우리의 송년 모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준 친구가 있다.
그냥 조명인가 보다, 장식품인가 보다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부식된 못과 연결된 선의 뭉툭함, 청명한 종소리를 알아봐 주는 사람.
이 종소리처럼 예쁜 목소리를 갖은 사람.
누굴 만날지 이젠 좀 알 것도 같은 이 사물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곧 갈게,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