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버려진 침대 스프링을 지나칠 때마다 느껴지던 눈초리를 잊을 수 없다.
녹슨 모습으로 유기견의 눈빛을 보내오는데, 저걸 어떻게 감당하겠어하며 지나쳤지만,
참 예쁘다 했었다.
스프링의 곡선과 반복이, 녹슬어 붉은 흙빛이.
2014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강동구 리사이클센터에서 업사이클아트센터를 기획하면서 입주작가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가 흔하게 목격되었고 이젠 지나치기 어려워졌다. 매트리스는 생각보다 다루기 어려웠다. 무거웠고 해체하기도 쉽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왜 이렇게 힘들고 무모한 것만 하냐는 핀잔의 눈초리를 줄게 뻔하다는 생각에 안간힘을 쓰며 센터 뒷마당으로 끌고 가서 혼자 분리했다.
망설이다 들고 오는 물건이 다시 그냥 버려지는 일은 없었다. 사물의 눈초리가 어떻고 하는 핑계를 대지만 가슴 한구석 감춰 둔 확신이 한 덩어리 팔딱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업사이클을 하기 위한 아이템과의 만남은 늘 목적이 정해져 있진 않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맘에 든다는 이유로 말을 걸고 관계한다.
잘못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뭐든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게 있다. 그게 스프링이었다.
재활용센터가 아니고는 내가 감당해내기 힘든 소재이기도 하다.
딱 적당한 시기에 우리는 재회했다.
구형 매트리스는 일체형으로 스프링이 모두 붙어 있었는데, 개별로 분리했을 때 기존 형태를 잃어버릴 상황이어서 형태를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을 모색해야 했다.
스프링의 반복이 만든 널찍한 판형의 매트리스 스프링은 든든한 남자의 등판쯤 되어 보이는 게 뭔가 담아내기에 믿음이 간다.
어딘가의 울타리가 되면? 수납장이 되기엔 흔들리겠지? 아냐 벽에 고정하면 되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드나들며 설득해댔지만 오래 버려지지 않기 위한 실용성은 잊지 않아야 했다.
장식과 수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수납장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스프링 곡선의 반복이 만드는 리듬은 안정적이면서도 경쾌하다.
자유로운 선이 자칫 혼란스러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스프링 전체 칼라는 회색으로 통일하고 수납박스는 변형된 사이즈 몇 개를 배치하기로 한다.
아, 사실 이건 나중 문제다. 일단 뜯어서 속을 봐야 한다.
겉 커버와 부직포로 싸여 있는 속까지 뜯어 내면서 심한 먼지가 나는, 즐겁지 않은 작업 과정이다.
예상치 못했던 불편함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결단코 근력 없는 내가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이 지저분한 꼴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부상 없이 서둘러 정리하는 게 그날의 목표였다.
눈물 나는 작업을 마치고 나니 제일 하고 싶지 않은 마무리 정리가 기다리고 있다.
뜯어낸 부직포들과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
업사이클 작업의 자격심사가 있다면 반드시 치러야 할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체하지 않고, 힘든 거 아니냐는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바로 움직여 정리했다.
합격이다.
말끔한 속살을 드러낸 스프링이 변색되지 않도록 회색 스프레이 락커로 마무리했다.
락커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면이 작은 형태의 물건에는 칠을 하기 어렵다.
몸이 지쳤지만 이것까지는 해둬야 칠이 완전히 말라서 다음 작업 진행에 속도가 맞아 힘 빠질 겨를이 없어진다.
다음날은 스프링 몸체에 배치할 세 개의 수납박스를 만들었다.
스프링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사이즈는 작게 만들었다.
색상은 따뜻한 계열에 비중을 많이 두고 차가운 색까지 이어지게 한다.
크기와 변의 비례도 다양하게 했다. 눈대중 황금비례?
가장 큰 박스에는 가장 밝은 색을, 좁고 긴 박스는 차분하고 어두운 블루 계열의 색을, 중간 사이즈에는 보색이면서도 다른 두가지색을 아우를 수 있는 색을 칠한다.
스프링이다 보니 박스가 쉽게 들어가고 고정도 잘 되었다.
이게 제대로 서 있겠냐고 걱정하는 말을 듣는다.
왜 꼭 세워야 하냐? 벽에 살짝만 고정해 주면 되는데 말이야.
내가 원하는 상태로 어떻게든 만들면 되는 거다. 내 거니까.
이 장식장은 판교 문아지 카페에 설치되어 몇 년을 지내다가 현재 김작가 예술창작소로 돌아왔다.
절대 파양은 아니고 카페가 문을 닫게 되면서 대환영을 받으며 내 곁에 오게 된 것.
작은 화분과 그림책, 여행의 추억이 수납되니 소울 장식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