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김작가 Feb 25. 2022

돌고 돌고 돌고-영원히 살지도 모른다 1

버려지는 의자의 환생




강동구 리사이클센터에서 기획한 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입주작가로 작업할 때였다. 

코엑스 겨울축제 업사이클 '트리 마을'이라는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뜻이 맞는 센터의 작가 몇 명과 공동작업으로 참여하기로 해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리사이클 센터 곳곳을 뒤지며 고민했었다. 리사이클센터가 업사이클 작업을 하기에는 천국이었는데… 아이템이 넘쳐 났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 풍요로움에 감사함을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센터 대표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좋은 환경을 잘 활용했어야 했는데 핑계를 만들며 실컷 작업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제 고물상이나 기웃거려야 뭐라도 만날까 싶다. 

트리 작업을 위해 찾아낸 의자들은 가풍 있는 가문의 물건들로 보이는 고급스러운 것이어서 마음 편히 해체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좋은 가구를 무작정 뜯어 내다가 버리게 될지도 모르지 않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머뭇거림이 심해서 작업을 시작할 때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그래서 공동작업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내 생각도 내가 모를 때가 많아서 오랜 시간 들여다보며 느껴야 감흥이라는 게 오는 MBTI유형 중 S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극 N이며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해서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넘어가다가 후회가 많다. 하지만 한순간 반짝하고 불이 들어오면 누구보다 선명하게 내 이야기를 피력하기도 한다. 상대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세월을 보내며 억울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다행히도 예전보다는 소통이 원활해진 것 같다. 작업과정에서 거침없는 성격의 친구가 등받이를 인정사정없이 뜯어 낼 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상실감마저 들었다. 팔걸이 부분과 등받이 가운데 부분을 일단 잘랐는데 절단면을 보니 티크 같다. 단단한 나무로 만든 연결 부분도 나사를 이용하지 않은 짜임 가구여서 더 튼튼했고 분해는 어려웠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따라야 했다.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일단 행동하는 자가 갑인 거다. 지난 작업결과에 대한 복기를 해보자면 원형 그대로를 살려서 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대로 물구나무만 섰어도 충분히 우리의 의도를 담을 수 있었고 가구의 고풍스러움이 트리의 격을 높였을 것도 같다. 나도 참 유난이다. 본래의 생을 마감하는 물건에게 경의를 표한다.

작업 과정은 간단했다. 칠하고 조립하고 간단히 장식하고 정도. 불필요한 작업 과정 없이 명료해서 좋았다.

발상과 의도가 중요한 거니까. 그것에 만족한다.

의자를 뒤집어서 트리를 완성했는데 물구나무서 있는 모습으로 보여 물구나무가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작품명에 모두 흡족해했다. 평소에 자신 없는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가끔 맘에 드는 내 작업이 나올 때 지나칠 정도로 만족해하고 자신 있어해서 그것도 문제다. 잘난 체하는 게 얼마나 꼴 보기 싫을까. 그래도 이렇게 내 마음에 흡족할 땐 어쩔 수 없다. 이런 맛도 없으면 무슨 재미냐.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 건 규모였다. 의자를 백개쯤 물구나무 세웠다면 군무가 되었을 텐데... 게다가 코엑스는 얼마나 광활하던가. 

전시는 잘 치러졌고 대부분의 설치 작품처럼 다시 해체되고 버려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힘들었다. 이별은 늘 힘드니까. 게다가 기본적으로 튼튼하고 아름다운 의자였다. 요즘 수입되는 겉만 그럴싸한 종류가 아니었다. 뜯어보니 더 그렇다. 

전시 후 버려지려는 순간 내가 처리해도 되겠냐고 다른 작가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의자 한 개도 버릴 수가 없었다. 

몇 개는 단층 협탁, 한 개는 이층 협탁으로 변형했는데 아주 좋다.

돌고 돌고 돌아 내게 온 물건. 

지금 모습은 마음에 드니?


물구나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작업해보고 싶다. 거꾸로 세상 보기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이 단어는 읽기만 해도 혈액순환이 되는 것 같다. 난 물구나무를 못한다. 겁이 너무 많아서 시도해 본 적도 없다. 물구나무라는 단어는 어린아이의 모습도 연상시킨다. 이상하게도 어른의 물구나무는 떠오르지 않는다. 물구나무를 선다는 게 머리를 땅으로 향하는 동작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향해 뻗는 느낌을 준다. 헐, 단어에 나무라는 글자 때문이라고? 땅에 머리를 박고 다리에 꽃이라도 피울 것처럼? 아니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팔보다 다리가 길어서 거꾸로 선 게 더 하늘로 뻗은 이미지라서? 조금 관찰이 필요하겠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생각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이제 내 세상이다!



이전 19화 침대 스프링은 아주 오래전부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