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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May 07. 2022

말해도 될 것 같았다

베짱이 데뷔 시인


말해도 될 것 같았다.

그냥 알아줄 것 같은 기분에 마음 놓고 망가져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래도 되냐고 검증받지 않아도, 내 식대로 말해버리고 장난이었다고 해도 화내지 않을 것을 아는 친구로 여겨졌다.

베짱이 사람들은 그랬다.

언제부터 그 마음이었냐고 묻는다면 처음부터였다고 말할 것이다.

사랑은 첫눈에 알아보는 법.
서로를 알게 되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단박에 사랑은 시작되어 있다.


너무 예뻐서 그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야 마는 주책없는 사랑꾼.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베짱이 도서관장 소영이는 소식지에 '베짱이 데뷔 시인 김 작가'라고 실었다.

그리고 69번째 베짱이 소식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다.



우산리에 베짱이 도서관이 열리고 첫 행사였다.

베짱이 낭만 콘서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시 낭독을 하게 되었다.

시인도 아니면서 불끈불끈 솟아나는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토해내고 말았다.

이때쯤 사랑이 절정기였나 보다.

웃음이 새어 나와서 민망할 정도로 사람들이 좋았으니까.

입가에서 꽃잎이 날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을까?




꽃이여 피거라

-김 작가-


입에서 꽃잎이 날아 나오는 걸 보신 적 있으신가

언제인지 모르던 날

날아들어온 꽃씨 하나

따뜻한 가슴 한편에 웅크리고 있다가

저도 모르는 날 피어 올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향기처럼 뿜어 내던

그 입가에 그 말

고마워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꽃이 날 수 있는 게 아냐

깜짝 놀래키며 말하고 싶어 질 때까지 기다려서야

입에서 솔솔

잘할 수 있을 거야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꽃잎이 날아 올라

입에서 꽃잎이 날아 올라

너에게 가도 되겠니

네 곁에 오래 머물러 노래해도 되겠니

꽃잎이 날아오르는 걸 보여주고 싶어

너의 꽃을 보고 싶어

꽃이여 피거라

꽃이여 피거라




느낌상,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앙코르가 터져 나와서 신도 났다.

사실은 내가 더 사랑한다고 고백이라도 하듯이 적어 둔 시를 낭독했다.






단풍 들다

-김 작가-


바람이 불어서 여기로 왔다고

한바람에 한데 모인 낙엽들이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소문은 무성했다.

노랑 잎 소영이가 파랑 잎 경화를 만나서 초록잎이 되었다네

빨강 잎 김 작가는 하양 잎 키키랑 뽀뽀하고 핑크 잎이 되었고

초록잎 은주는 보라 지연 잎에 기댔다가 웬만해선 흉내 내지 못할 자국을 갖게 되었다는...

본래는 연둣빛 인적도 있었다는 어린 노랑 잎 정민이도 세피아 잎 근주와 분위기 타다가 갈색이 되었다는군.

한참을 지켜보던, 다크 씨엔나라고 해야 하나? 진한 갈색이면서 어떤 색에 섞어도 특별한 빛을 발하는 그색, 다크 씨엔나 잎 경란이가 시크하게 말하는 거야. 다들 이제 혼자서도 잘 지내네... 나 없어도 되지?

글쎄 말이야...

오렌지빛 구름이가 스카이 블루보다 잘 어울리던 하늘이었지 아마

보라 잎 혜숙이가 난데없이 춤을 추더라.

연두빛깔 소현이는 그린색 승희랑 같은 계열이 아니라고 우기기는 했으나

자리를 잃고 헤매는 날에는 살며시 그린 계열 자리에 앉고 말더라고.

그러게 말이야...

누구나의 부러움을 사는, 남정민이라 남색인지 남색 잎 정민이가 빨강 잎 정숙이를 좋아했나 봐. 자기 꿈이 남보라색이라고...

그랬구나

바람결에 홀랑홀랑 뒤섞이던 잎들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웃는지 우는지...




여기저기 웃겨서 쓰러졌다.

이 시는 우리끼리만 재밌는 시일지 모른다.

궁금하다.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을까?

내 마음엔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순수한 마음, 그것으로 인정.


이 콘서트를 마치고 너무 행복한 나머지 후기 글을 적어 두었다가 소영이한테 슬며시 공개하니 바로 소식지에 실렸다.




베짱이 낭만콘서트 후기

-김 작가-


우수수 함께 지고

실컷 바스락거리고

화사하게 함께 피어나자고

단풍 들고, 단풍지고.

베짱이 도서관의 겨울이야기는 그랬다.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거지?


다음엔 노래도 한곡 해봐야겠다.

그래도 되겠다.

떨어진 낙엽의 희미한 바스락 거림도 들어주는 베짱이는 그런 나무였다.

그 나무에 다시 꽃이 핀다면 나이고 너이고 우리인걸 알아봐 주길...




이렇게 베짱이 데뷔 시인이 되었다.

잊고 있던 베짱이 도서관의 비밀번호가 막 떠오르려고 한다.

지금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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