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바로 말하자면 베짱이 도서관,
그냥 우리는 베짱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퇴촌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베짱이와의 인연이었음에도 다른 글보다 뒤로 미루어진 건 그만큼의 중량감 때문이다.
어쩌면 퇴촌 생활의 대부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라서 어느 부분에서 접근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또는 베짱이 측근적인 시점에서 묘사된 그림이라서 '말도 안 돼'라고 비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작품으로 보자. 이것은 나의 그림이므로...
2016년 늦가을로 기억하는데 관음리에 있는 베짱이 도서관에서 하는 무슨 모임인가를 참여하게 되었다.
모임이라기보다는 다과회 분위기였다.
퇴촌으로 이사를 오면서 지인이 행복한 표정으로 소개해 주며 함께하면 좋을 거라고 했다.
개인이 설립한 비영리 도서관인 베짱이는 후원자들인 개미들의 에너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간섭을 싫어하는 내가 이런 엮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망설임이 생기지 않았다.
편한 옷차림에 편한 상차림, 자연스러운 표정들...
오고 가는 대화와 노래가 익숙했다.
혼자만 말하고 듣고 있는 사람 없는 모임이 아닌 소통하고 있었다.
할 말이 많아도 참아주고 소소한 개인의 이야기가 가치 있게 느껴지게 하는 곳.
참 오랜만이다 싶었다. 아니 이제 돌아왔구나 싶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개미 친구들은 김 작가 그때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첫 만남의 어색함 정도였지 마음은 버텨야겠다였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경직되어 보이고 한 마디씩 나올 때도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고는 한다.
아마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만났던 그 동물들과 사람들처럼 이상하지만 어딘가로 향하는 말을 하고 있나 보다.
이렇게 글로 써보라고 했으면 마음을 편히 표현했을 텐데...
그래도 사람들은 갸우뚱했을지 모르지만 지금보다는 이런 사람이구나 해줬지 않았을까?
어색했지만 여기다 싶을 만큼, 너희들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을 만큼 맘에 드는 베짱이와 개미였다.
퇴촌에서 베짱이 도서관을 불편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짱이끼리 뭉친다고...
어쩌면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은데 다가가기 어색해서 그런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해준다.
"맘에 들면 버텨야 해!"
어색해서 그런 거야 시간이 필요해
당장 일어나고 싶은 만남들이 있다.
인생은 순식간이다. 그럴 땐 버틸 필요 없다.
흔적 지우고 일어나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라 생각하면 적절하다.
운이 좋게 베짱이 도서관의 개미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키키 작가와 방 한 칸을 셰어 하게 되었다.
여간해서는 내 공간을 떠나는 법이 없는 나에게 친해질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키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키키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미술수업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퇴촌의 전부라고 느꼈던 베짱이 사람들은 자연스러웠고 다른 곳에서 부자연스러웠던 나조차도 여기서는 재밌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했다.
우울도 스타일인 것처럼...
베짱이에서의 개미들은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려 한다기보다 그대로가 가치로워서 더 이상의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베짱이가 깃발을 꽂았고 냄새 맡고 나타난 개미들은 집을 지었다.
창고에 곡식도 쌓아두고 쉴 공간도 마련하며 파티도 열고 열매도 맺고...
베짱이 낭만 콘서트
"오랜 날 오랜 밤"
베짱이가 응원하는 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이 글에는 내가 응원받은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베짱이가 60호의 소식지를 끝으로 관음리의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콘서트를 열었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날은 즐거운 날이었지만 모두가 슬픔을 삼키며 진행되었던 이별 파티였다.
마지막 일지 모르는 콘서트...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래도 될 것 같은 콘서트였고 나의 아들도 주인공이 되었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훌륭한 밴드와 노래를 했다.
하현우의 붉은 밭.
지금 동영상을 봐도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은 부끄러워서 그러는지 지우고 싶은 추억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자랑스러운 날이 올 거야.
누구는 시인이 되고 누구는 소설가가 되고 누구는 가수가 되고 화가가 되고, 파티쉐가 되고...
아니 어쩌면 된 것 아니고 보여 준 것이 맞겠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곳에서 마음을 열고 노래하게 되니까.
그런 베짱이 도서관을 개관한 베짱이는
여러 해 겨울을 일 안 하고 놀면서 실력을 쌓았나 보다.
타고난 음감에 조율사이기도 한 베짱이 소영이는 신비로운 기타 실력과 곧은 심지가 엿보이는 글, 대상을 이해하고 통찰해 내는 능력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 실력까지 갖춘 현실감 없는 캐릭터다.
우리는 모두 소영이를 사랑한다. 혹시 잠깐 미웠더라도 그것도 사랑 탓일 거다.
모두의 염원으로 2년 정도의 휴식기를 지내고 우산리에 베짱이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어서 또 다른 개미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관음리 베짱이의 한 지붕 가족이던 내가 인싸냐 아싸냐를 두고 고개를 돌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문만 열고 들어가면 인싸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터라 괜한 심통인걸 인정한다.
아싸라도 좋다. 아름다운 베짱이라면...
베짱이에는 소영이의 소울메이트 경화가 운영하는 랄라 브레드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