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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Sep 01. 2024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늘 그랬던 것처럼

늘 그랬듯이 무작정 읽어 내려갔다.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나도 모르는 새 몰입을 하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된다. 이야기 속에 빠지면 어느새 나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까마득히 잊은 채 책 속에 주인공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가끔은 여행을 하다 마음이 찡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깔깔깔 웃다가 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지난 몇 달간 일주일에 한 번 책 한 권을 읽고 독서노트를 쓰는 <언제나 책봄> 30편을 연재했다. 50권, 100권까지 가보자던 호기로운 나의 결심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속이 상했다. 한 동안은 글을 못 쓸 줄 알았다.

지난 기자 시절에도 여러 이유로 부딪힘도, 어려움도 많았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 어쩜 팔자인 걸까? 생각하다 내 방에 걸려있는 나무 십자가를 보고 그분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책을 통해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글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후련해진 내 마음. 책 속에 내 마음.




이제 물러갈 때도 됐는데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볼을 스치는 끈적한 습기에 꼼짝달싹도 하기 싫어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린다. 기자를 그만두고 몇 달간 쉴 무렵 한 번에 책을 왕창 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 질러버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책을 사거나 옷을 산다. 아픈 나에게 주는 보상 심리란 핑계로.... 옷보다는 책이 경제적이지 하며 장바구니에 거의 30권가량에 책을 담았다. 마침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을 소개하고 있어 나의 손가락은 클릭, 클릭을 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김애란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는 걸 보고  정신을 차렸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여러 권의 책을 다시 덜어낸다. 그리고 글을 쓰는 오늘, 생일 선물을 사달라는 딸과 함께 백화점을 갔다가 나도 모르게 옷을 사버렸다. 책과 옷. 불치병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이 가정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책 제목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악의적인 거짓말일까? 혹은 선의의 거짓말? 아니면 정말 몰랐을까?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아주 인상 깊게 보기도 했고, 나의 마음이 거짓말!! 이란 단어에 이미 꽂혔다. 인생에서 첫 실패를 맛본 것이 고3 여름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를 시험 봤다가 떨어진 일이다. 이후 그해 겨울 다른 학교의 연극영화학과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첫 실패를 맛본 여름날의 기억과 오버랩되어인지 한예종 출신은 뭔가 다르고 위대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김애란 작가가 한예종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한 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극작을 전공해서 그런지 이야기의 흐름과 플롯이 한 편의 영화 같다.


지우와 채운, 소리 이 세 사람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떤 거짓말일까? 의구심을 갖고 세 사람의 마음을 훔쳐보는 일은 꽤나 진지해 속도감이 붙었다.

가슴을 저미는 슬픔과 이제는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사고여서 더욱 안타까운 주인공들의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눈이 뿌옇게 희미해지면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는, 소설이기에 가능한 장치까지 더해져 감동과 재미를 더한다.

전학생인 채운에게 담임은 첫날 게임을 제안한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나도 해보고 싶었다.

-나는 삼시 세끼 고기가 나와도 좋다.

-청각이 발달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부모님 몰래 나이트클럽에서 하힐을 신고 춤을 추다 넘어져서 깁스를 한 적이 있다

-몇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속상한 일은 글로 써야 풀린다.


나중에 친구들과 함께 해봐야겠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살다 보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종종 생긴다. 죽을 만큼의 가난을 경험해 보지 않았고, 부모를 먼저 잃은 자의 슬픔도 그저 막연히 가늠할 뿐이다.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잘 받기도 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가슴이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해 세상과 단절되고 싶을 때,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엿보고 싶을 때 난 책을 읽는다. 읽다 보면 응어리졌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일들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하는 여유가 생긴다. 특히 잘 흥분해 끓었던 내 마음도 차분해지곤 한다.


지우는 문득 교실 안이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지우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조금 의연해진 투로 다음 문장을 읽어나갔다.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2024) 문학동네 p85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2024년 늦여름 김애란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앞으로 나의 삶의 방향과 궤도가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복잡 다난한 삶을 살아가며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을 돌볼 줄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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