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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Sep 08. 2024

독후감과 서평 사이

나민애 교수의 '책 읽고 글쓰기'

글 쓰기에 관한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영상을 보았다. 여느 서울대 교수들의 영상보다 재밌고 유쾌한 데다 내용이 귀에 쏙쏙 박혔다. 나민애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글쓰기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7년부터 매년 최소 200명 이상 학생들을 만나 최소 한 해에 200편부터 400편에 달하는 학생들의 글을 읽고 첨삭 지도를 한다고 한다. 문학평론가로, 현재 동아일보 주간 시평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싶었고, 서울대 학생들의 글쓰기는 어떨까 엿보고 싶어 고른 책이 나민애 교수의 《책 읽고 글쓰기》*다.

'서평이라고 다 같은 서평은 아니다'라고 시작한 글은 우선 나의 서평 체급부터 뒤돌아보게 했다.

나 교수는 서평러 수준을 울트라 상급자(책의 전체를 장학하고 저자의 의도를 알고 있다)에서 상급자 1,2 →중급자 1,2 →초급자 1,2→그 외 특수한 상황으로 구분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그 외 특수한 상황의 사람들에게까지 솔루션을 제공한 걸 보면 나 교수는 분명 친절한 분일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난 다행히 상급자 2 정도는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상 2: 책의 전체 요지를 알고 핵심을 파악했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만 어디까지가 내 의견인지, 감상인지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서평이란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서평 쓰기를 고민하면서도 정작 서평의 뜻은 잊고 있다.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평가를 위한 분석과 판단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나민애,《책 읽고 글쓰기》, 서울문화사 2020, p34


저자는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강조했다.


'독후'에 '감상', 그러니까 '마음의 소리'와 '내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독후감이라면 그것보다 '마음의 소리' 지분을 줄이고, '머리의 소리' 즉 '이해와 판단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서평이다.


<나민애,《책 읽고 글쓰기》, 서울문화사 2020, p33>



책 초반부터 나의 글쓰기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됐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지? 글의 정체성과 유형은 무엇이었나?

매주 책 한 권 읽고 느낀 점 등을 브런치에 연재한 <언제나 책봄>과 <책 속에 내 마음> 사이,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고민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대로 시간에 쫓겨 매주 책 한 권 읽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급하게 토요일 새벽 마감을 칠 것인가?

아니면 나 교수의 책을 완전히 습득해 본격적으로 서평이란 것을 써볼까?

또 다른 마음엔 서평이면 어떻고 독후감이면 어떤가?


자가 진단을 해보자.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1. 글 쓰는 걸 좋아한다. why? 생각과 마음 정리에 글 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2. 지난 20년 간 글 쓰는 것을 업(방송 기자)으로 삼았기에 뭐라도 안 쓰면 허전하고 불안하다.

    why? 잘 모르겠다.

3. 잘 쓰고 싶다. why?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과 인정 욕구가 강하다.

4. 책을 읽고 뭐라도 남기고 싶다. why? 나중에 읽어보면 재밌다. 일종의 기록이다. 인간의 본능이랄까?


나의 글 쓰기 현주소는?

1. 블로그에 서평이나 여행 감상글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 why? 브런치 연재 작가지만 정식 작가로 등단을 하지 않았고, 출간 책도 없다. 아카데믹한 학술적인 글에 약하고, 백일장에서 입상한 정도?

2. 기사체에 길들여져 있어 뻔하고 관용적인 표현이 많다. 가끔은 기사처럼 글을 쓰거나 아니면 감상에 빠져 축축한 감성 토하기에 급급하다. why? 오랜 시간 기사를 써왔고,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토하듯 일기처럼 쓰다 보니 어쩌다가 이렇게 됐다. ㅠㅠ

3. 글 쓰기를 감정의 해소와 치유로 여긴다. why?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4. 공무원이라는 직업상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표현이 제한되어 있다. why? 혹 나의 글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어서.

5. 글은 쓰고 싶은데, 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why? 4번의 이유와 비슷

6. 소설 장르는 아직 도전조차 못 해봤으며, 에세이를 좋아한다.


매주 즐기듯이 책을 읽고 부담 없이 쓰려면 독후감, 독서 에세이 정도가 좋을 테고,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 자신을 발전시키려면 서평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하지만 당장 결정은 못 하겠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포커페이스 한 채 민원인을 대할 때가 많고, 비판과 분석 영역에 가까운 기사를 오래 써온 탓에 글 쓸 때만이라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란 말처럼 이 책은 참 친절하다. 서평 체급 정하기부터 종류, 서평 쓰기 실전 활용 꿀팀까지. 서평을 쓰기 위한 정보가 아주 알차게 들어 있다. 다만 한 권의 책을 읽었다기보단 실제 대학 강의를 듣는 것만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를테면 "책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서평러에게 부치는 당부 "절대, 네버, 쫄지 마시라."라는 부분을 읽을 땐 강단에 선 교수가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됐다. 이런 교수님께 수업을 들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실제 경험해 봐야 알겠지책을 읽다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분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실행에 옮긴 순간 이미 절반 이상 한 셈이다라는 문단이었다.  


'분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분석의 시작이자 절반은 '선택'이다. 점심 메뉴 고르기도 힘든데, 무슨 선택이냐고? 아니다. 서평러의 선택은 어렵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접어놓는 페이지, 긋는 밑줄. 이것이 바로 당신의 중요하고도 중요한 '선택' 그 자체다. 다시 말해서 페이지 잘 접고, 포스트잇 붙여놓고, 연필로 밑줄 그어놓는 행위 (꼭 자기 책인 경우에만 그으시오. 대출도서는 밑줄 금지) 이것만 잘해도 분석은 이미 절반 이상 한 셈이다. p120


이 책을 통해 서평에 대해 알고, 나의 글쓰기 주소를 진단하고,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서평이란 걸 써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절반 이상 한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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