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 작가에 선정됐다는 건

사직을 앞둔 지금... 그만큼 절박했다

by 임가영

회사 안 간지 3주째 되는 날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선정되었단 메일을 받았다.


아무런 계획 없이 도망치듯 회사를 나온 터라 사실, 지난 2주간 나의 마음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황량함과 잔인함, 그 밖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로 뒤범벅 돼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다고 아빠에게 말씀을 드리고 난 후 어색했던 집안의 공기도 싫었지만

외출했다 돌아오신 아빠가 고관절이 부러져 인공 관절 삽입 수술을 하게 된 사실도 정말 끔찍했다.


이쯤이면 44살씩이나 되는 딸이 왜 그렇게 아빠를 신경 쓸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린 친정부모님과 한 집에 살고 있다. 10년 전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각각 살고 있다가 평수를 조금 늘려 그 아파트 다른 동으로 살림을 합쳤다. 말이 좋아 살림을 합친 거지 친정 부모님께 얹혀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기자란 직업이 이른 새벽에 나갈 때도 있고 퇴근 후에도 간담회다 뭐다 늦을 때가 많았고, 미용사인 남편은 주말에 더 바빴던 터라 내가 일을 하기 위해선 부모님 도움이 절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아빠를 사랑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빠가 수술 직후 마취도 덜 깬 상태에서 하신 첫마디는

"소원이다. 회사 다시 가. 효도한다는 셈 치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내적 갈등이 심해 잠 못 이루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사실, 아빠 수술 직후 그 주 주말에는 다시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었다.


백 번을 고민하다 a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던 그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이 시간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해도 되냐고 물으니 당황스럽다. 회사를 그만두려던 이유와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닐 텐데 사흘 만에??.... 중략.... 보도팀 전체와 팀원 그리고 회사를 보고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a 역시 지난 일주일이 지옥 같다고 했다.

그 이유는 a가 너무 잘 알겠지...


회사는 완벽한 사직 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직 의사를 왜 sns에 올려 물의(?)를 빚었냐며 내 글을 내려달라고 채근하기도 했으니까. 좁은 동네라서 그런지 소문이 빠르긴 한가보다.


a의 카톡은 17년 간 기자 생활을 하며 마음속에 꾹꾹 눌러왔던 울분과 덩어리 진 화, 미운 감정의 찌꺼기들이 터지는데 도화선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난 한 치의 미련 없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병실에 계신 아빠와 엄마가 기자인 게 마냥 좋은 11살 딸은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나의 확고한 결심은 전했다.


회사에 가지 않았던 지난 3주 중 2주는 쉼 자체의 기쁨, 해방감은커녕 오롯이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던 시간이었다. 네 개인적인 글을 왜 sns에 올리냐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메모든 일기든, 어떤 형태로든지의 기록은 내가 살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었다.




중학생 시절 모 교사는 수업 시간마다 "네 이름이 뭐더라" 하며 교복 블라우스 위에 달린 초록색 명찰을 만지작거리며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난 그 시간이 지옥 같아 학교에 가기 싫었고,


세상이 이런 날 이해해 주지 않는 것만 같아


난 반년을 입을 닫고 살았다.


세상에 내가 살고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렸던 6개월 간

내게 실어증이 찾아왔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시절을 보낸 이후

내겐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말보다는 글이 편했고 내가 솔직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사실 기자란 직업이 힘들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직업 자체를 즐긴 순간도 많았던 것 같다. 단독 보도가 나간 뒤 문제점이 개선됐을 때,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문화 현장을 취재했을 때,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기사 말고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어진 난,

지난 2주간 애들이 아직 깨기 전인 이른 새벽과

잠든 이후에 틈틈이 뭔가를 계속 끄적거렸다.


온전히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Daum 브런치 스토리에

3편에 글을 보내 작가 신청을 했고, 브런치 작가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작가로 선정됐다는 메일을 열어본 순간 난 울고 말았다.


'사실 임가영 기자로 17년을 불려 오다

기자란 두 글자를 내려놓고

가영 씨, 누구 엄마, 아뜰리에 b 미용실 원장 부인, 전에 기자였던 44살 여자 아줌마란

현실을 마주하기가 너무나 무서웠거든. 그런데 내 이름 뒤에 그토록 원하던 작가란 귀한

글자를 쓸 수 있게 된 거야'


아직 내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열심히 계속 쓰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을 잘 쓰기보다는 간절하고 절박한 나의 마음이 전해진건 아닐까?


막막했던 하루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양한 루트로 내 삶을 그리고,

기록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아가 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