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trak Coach
루미씨는 아이다호주의 콜롬비아 분지를 지나며 아침을 맞이한다. 낯선 곳이어서 인가, 미국에 온 후부터 빛이 드리우면 마음이 편해진다. 뭐든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다. 반면 어두워지면, 많은 행동을 줄이게 된다. 일단 돌아다니는 것, 먹는 것 등을 최소화해서 동선이 길지 않게 한다. 그렇게 자주 가던 화장실도 정신력 + 물리력으로 줄인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어서 밤이 오길, 그래서 저 분주한 농사일이 마무리되길 바랐었다. 집안일 또한 다 정리되고, 마지막 하똘이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 거실의 불을 끄면, 모든 게 어둠과 정적에 덮이며 오롯이 루미씨의 시간이 되었으니...
이번 여행은 돈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군. 하고 느낀 여행이다. 달러 환율이 높아서인가, 요즘 미국은 유독 물가가 비싸다. 별거 아닌 밥 한 끼에 2만 원은 기본이고, 세 여자가 먹은 삼겹살 식당의 식비가 30만 원 그리고 맥주 한두 잔과 간단한 안주에 팁을 계산하면 5만 원정도이다. 긴 여행을 하다 보니, 역시 돈으로 편안함이 좌우된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도 있으니 더 그럴 테지만. 비행기 좌석은 그렇다 치고, 다니기 편하고 그 자체가 힐링인 호텔에서의 숙박, 시카고의 야간 스카이라인을 보며 먹는 저녁 식사, 미시간호의 요트 그리고 Amtrak좌석 등이 업그레이드된다면, 발품과 편안함에 즐거움을 겸비한 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뚜벅이 여행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보다 상큼, 러블리한 시니어 뚜벅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침은 커피 한잔이면 됐고, 점+저를 한 번에 해결하고, 밤에 가볍게 맥주 한잔 하는 루틴이 이어진다. 평소에도 무엇을 먹을까? 하는 화두를 갖고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그 지난한 과정과 특히 그 중심에 여성이 있음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던 바, 지금도 루미씨는 생각한다. 평소에도 이렇게 식사를 가볍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간에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라고 헬렌 니어링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루미씨는 그 시간에 하똘이와 산책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흔들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저녁놀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러고 보니, 루미씨는 저녁놀 맛집인 그녀의 집에서 조차 저녁놀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어디로 갈까? 뭐 먹을까? 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에너지를 허비하고 싶지 않으므로, 루미씨는 외로워도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루미씨는 미국여행 2부가 살짝 걱정된다. 괜한 짓을 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