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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Nov 14. 2023

耳順, 그리고 심리상담

11월 12일  제주도의 비바람 치는 밤

선생님 드디어 집을 떠났습니다. 예정 시간보다 좀 서둘러 나왔지요. 다시 시작되는 듯한 남편과의 자리가 불편해서입니다. 며칠 전부터 제 차에 짐을 하나씩 실어 두었고, 어느새 차는 하똘이 자리 빼곤 짐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간다는 말에 친구는 배추와 알타리를 절여, 김장을 담아 주었고, 김치통 2개를 조수석 발치에 두는 것으로 준비는 완료되었습니다.      

하똘이와 아침 산책을 했습니다. 하똘아 여기 냄새 잘 기억해 둬, 우리 여기서 재미있었지? 하늘도 보고 두더지도 잡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똘이 너 똥과 오줌을 다 받아준 흙이잖아. 마지막으로 막내가 준비한 하똘이 간식과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주머니를 받아 완도로 출발했습니다.      


아이고 또 바보같이 눈물이 나오네요, 그래도 아이를 셋이나 낳고, 37년을 산 곳이니 말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는 거지? 왜 가는 거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내게 왜 생긴 거지?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부끄럽지만, 나오는 눈물은 저도 어쩔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하똘이가 차에서 잘 있고, 휴게소 후미진 곳에서 볼일을 보기도 하며, 4시간 걸려 완도항에 도착했습니다. 배를 타기 전에 하똘이가 완도항 언저리에서도 볼일을 시원하게 봐줘서 한 시름 놓았지만, 진짜 난코스는 이제부터였습니다. 배에 실린 차에서부터 팻룸까지 가는 길 말입니다. 이 때는 반려견을 케이지에 넣어 가야 합니다. 12kg이 조금 넘는 하똘이에게는 좀 작은 듯하지만, 절약하기 위해 딸에게 빌려온 케이지에 하똘이를 넣다가 놓치고, 다시 잡아다 넣으며 기운을 다 뺐습니다. 구겨 넣어진 하똘이는 영 불편해했지만, 또 다른 난관은  캐리어를 끌고 저 멀리 개찰구까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지야 바퀴가 있으니 그나마 낫지만,  승선을 위해 4층까지 계단으로 어찌 올라갈지 아찔했습니다. 낑낑거리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뒤의 아저씨가 함께 들어주셔서 그나마 잘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휴, 하똘아 조금만 기다려, 이제 방에 들어가면 돼. 6203호. 저는 팻 룸을 1인실로 착각했습니다. 앗, 순종혈통을 가진 소형견 3마리가 보호자와 함께 있습니다. 하똘이는 이들보다 2배는 덩치가 컸고, 이렇게 반려견을 데리고 혼자 배를 타는 사람도 저 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제 보니 하네스와 리드줄을 차에 놓고 왔습니다. 3시간을 가야 하는데, 하똘이를 방에서 마구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어서, 같은 룸을 사용하는 남자분께 양해를 구하고 6층에서 2층에 있는 차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차까지 가는 길도 여러 절차가 있더군요, 한참을 기다리다 하똘이가 걱정돼서 룸에 갔더니, 잘 있다고 순하다고 합니다. 저는 다시 차로 가는 길목으로 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차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와서, 헐레벌떡 룸으로 갔습니다. 하똘이는 너무 잘 있었다고 합니다. 아저씨가 앉아하니 앉고. 이리 와하니 오고....      


그렇게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갑니다. 가끔 울렁거리기도 하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다시 구겨질 하똘이를 생각하면 손에 땀이 나지만 말입니다. 룸 사람들과 반려견 이야기를 나누며, 순종들 사이에서도 시고르자브종인 하똘이가 참 예쁘고 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만큼 하똘이가 긴 여행을 잘 견뎠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주여객항에 내려 친구를 데리러 공항으로 갔습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하똘이 산책도 넉넉히 할 수 있었구요. 친구는 혼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산에서 달려왔습니다. 아니 날아왔습니다. 뭘 와, 바쁜데. 사실은 하똘이랑 둘이 썰렁한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단숨에 달려온 친구와 동문시장에 들러 먹거리를 챙겨 임대한 집으로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짐을 몇 개 나르고, 우리는 시장에서 사 온 저녁거리를 먹었습니다. 오는 길에 제가 좋아하는 맥주를 사자며 들른 편의점에서 저는 ‘이제 술 안 마실 거야.’ 라며 친구를 위한 작은 캔 하나를 샀습니다. 이상하게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가 딱, 마시기 싫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은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며 든 것이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더니, 정말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썰렁하던 집이 보일러 가동과 함께 친구의 온기가 더해져 아늑합니다. 제 심장의 콩닥임이 무슨 방아를 정기적으로 찧듯이 울려대 한숨도 못 잔 어제와는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저는 하똘이와 친구와 편안히 잠이 들었습니다. 밖에는 비바람이 거세고 불었는데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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