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자씨의 미국살이

서른 넷에 과부가 된 *자씨

by Rumi

내가 그리 이모를 좋아했나? 혹은 내가 그리 정 많고 따뜻한 사람인가? 난 왜 여기 있지? 내가 미국에 왜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대라고 하면, 글쎄 너무 뒤섞인 머릿속에서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계시라,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도 굳이 근거를 물고 들어가면, 딸만 8명, 그중 4명의 딸이 살아남았고, 배다른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의 맏이였던 분을 엄마로 삼은 인연이지 않을까 싶다. 외할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가보다는 외가와 가깝게 지냈고, *자씨도 그중 한 명이다.


얼마 전까지도 보조기를 이용해 햇살이 잘 드는 요양원 식당에 가서 삼시 세끼를 먹던 *자씨는 이마저도 그만두었다. 이모, 거기까지 가기 어려워서 그랬어? 말도 안 통하고... 이모와 산책 겸 홀과 복도를 지나 건물 끝쪽에 가니, 주방과 식당이 있다. 여느 레스토랑 혹은 커피숍 같다. 식당에서도 주방이 훤히 보이고, 평상복을 입은 주방장이 연신 웃으며 사람들을 응대하며 요리한다. 큰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식당에 있는 뒷문을 열고 나가면 작고 예쁜 정원이 있다. 테이블엔 고급스러운 식기가 세팅되어 있고(식기가 하도 예뻐 상표를 보느라 들어봤더니, Made in England), 정원에서 가져다 놓았나 식탁마다 꽃이 놓여있다. 무엇보다 자상한 아빠가 아이들 식사를 즐겁게 준비하듯 연신 미소를 머금은 주방장의 경쾌한 몸짓이 수용시설이라는 경직된 인상을 덜어준다. 물론 거동이 불편하고 아픈 분들에겐 방으로 식사를 가져다준다. 역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씨는 고모들의 영향으로 교회를 어릴 적부터 다녔다고 한다. 결혼도 교회 장로님의 술 좋아하는 아들과 했고 술로 인한 사고로 이모부가 돌아가시자, 다니던 교회의 도움으로 백화점 한 코너에서 옷 장사를 하기도 했다. 그 후 교회의 소개로 일찍 상처한 나이 많은 백인 목사와의 결혼으로, 37살에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미국 아이오와에 오게 된 것이다. 미션 스쿨을 10년 다녔어도, 엄마가 그리 강요했어도 루미씨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그래도 기도의 힘은 인정한다. 이모 기도해야지. 기도 요즘 잘 안 해. 그렇지 기도도 습관인데. 예배는? 여기 일요일에 예배 보잖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안 봐. 그래도 이모 찬송이라도 듣고, 그냥 혼자 기도해도 좋잖아.라고 말할 뻔했지만, 루미씨는 *자씨의 외로운 눈빛을 어느새 알아챈다. 맞아 이모.


컨트리 가수의 공연을 보던 날도, *자씨는 정 자매 특유의 미소를 입 모양으로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자씨보다 더 몸이 안 좋아 보이는 백인 노인들은 노래를 따라 하거나, 가수의 멘트를 알아듣고 웃는 등의 반응을 할 때도 *자씨는 그저 내가 이 자리에서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입가의 미소로 반응하고 있었다. 늘 저런 대응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조커와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떠오른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편안하게 반응하고 즐기는 백인 노인들 틈에서, 결국 *자씨는 방문을 닫았다. 이는 마치 여러 한국 사람 사이에 혼자 일을 온 외국인 노동자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네, 우리 동네 노인들이 요양원에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인 누이가 어찌어찌해서 노인 중 1인이 된 거네. 누이도 간단함만 나누고 입가에 미소로 반응하며, 방으로 들어가겠지.


40여 년 만에 사촌누나가 온다는 소식에, 막내 남동생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7살에 미국으로 간 동생은 어느덧 쉰 살이 되었다. 큰 사촌 동생에 따르면, 막내는 6년밖에 한국에 안 살았으면서, 미국에서 새아버지가 주방일을 하라고 하니, 막내 : 난 남자라 안 한다. 새아버지 : 미국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깨갱. 참 우픈 에피소드다. 루미씨의 외가는 본처가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내리 새 여자를 들이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자씨는 딸 셋을 낳고 막내로 아들을 낳았으니, 당시 서른 살이었던 *자씨는 이승에서 이루어야 할 과업을 이룬 것이었으리라. 그런 막내가 미국의 중년 가장이 되어, 학교 친구였다는 부인과 세 명의 자녀 중 두 딸과 함께 루미씨와 *자씨를 데리러 요양원으로 왔다.


*자씨는 아들의 전화를 받자마자 화장실을 가고, 틀니를 닦아서 끼고, 옷을 갈아입고 루주를 바른다. 이모, 블루가 참 잘 어울리네, 우리 엄마는 핑크 핑크였는데. 나도 핑크 좋아했는데, 이제 이 색이 좋더라. 뽀얀 이모 얼굴에 맑은 블루는 참 멋진 조합이다. 조금 후 사촌 동생이 왔고 우리는 43년 만에 꼭 안았다. 너 요만했는데.... 허벅지 중간쯤을 가리키며, Very small. 했는데.... 사촌은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미국의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차에는 아내와 그의 딸들이 있었고, 말이 안 통하는 요양원을 나왔지만 여전히 *자씨는 말이 안 통하는 차에 태워졌다. 예약한 초밥집에 도착하니 얼마 안 있어 큰 사촌이 온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는 것도 한국말을 조금 하는 큰 사촌 없으면 어려운 상황이다. *자씨는 아들과 스킨십 혹은 보는 것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들과의 대화도 큰 누나가 통역을 한다. 가운데 앉은 이모는 미국인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에 역시 요양원 홀에서 보였던 그 미소를 짓는다. 눈망울은 흔들리는데 미소는 짓고 있는...


루미씨는 특기인 말 끊는 기술을 발휘해서, *자씨가 말을 하도록 한다.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하고 싶은 엄마의 말이 있을 테니 말이다. 이모, 기분이 어때? 이모 아이들 기르느라 고생했네. 이모 얘가 누구라고 했지? (막내 사촌의 딸을 가리키며) 역부족이다. 빠른 영어가 우리 사이를 채운다. 처음 온 미국 중부의 시골 마을, 본토 영어를 쓰는 이들의 말을 나도 전혀 못 알아듣겠다.


왜 이들은 한국말을 다 잊었을까?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기사 사촌들이 아이오와에 왔을 때는 온통 백인들 뿐이었다고 한다. 이제 아버지조차도 미국인인 사촌들은 살아가기 위해 영어를 배웠어야 할터이다. 하지만 *자씨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자씨 4명의 자녀 중 한국말을 조금 하는 이는 큰 딸뿐이다. 12살, 9살에 떠난 두 딸들도 전혀 못 한다고 한다.


한국의 다문화가정에서도 엄마 나라말을 못 쓰게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들의 한국말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엄마는 소외되고 만다. 엄마랑 무언가를 상의할 수도, 감정을 나눌 수도 없는 상황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해진다. *미씨는 말로만 듣던 한국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아이오와의 *자씨에게서 마주한다. *자씨는 다시 한국 사람, 사촌들은 어느새 미국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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