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의 의식
Joe는 기차 시간표를 출력해서 몇 시 기차를 탈 것인지 묻는다. 루미씨는 적당한 시간인 10:04. 그럼 집에서 9:15에 나가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근방(?)의 기차역에 오니, 그들의 호의가 고맙다. 그 긴 시간을 들여 3일 동안 태워다 주고, 저녁 시간에 맞춰 태우고 오려했다니.... Joe는 이름도 예쁜 오로라역까지 데려다주면서 가방도 들어주고 기차표도 자기가 산다고 한다. No. I will. And pray for me. Thank you, Joe. 기도까지 부탁한다. 그래, 기도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오로라역에서 표를 끊고 지나가는데, 루미씨 나이정도의 여성이 부른다. What? 다시 들으니, 니 옷 어디서 샀니? 였다. In Korea. Verry cutty. Thanks a lot. 아 이거 Jeep인데.... 미국 브랜드인데. 기분 좋은 시작이군. 그리고 이제부터 일주일은 혼자다.
시카고 유니언 스테이션에 도착하여 가장 낯익은 카페인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구글 맵을 열고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앗, 왜 도보 안내가 안 나오지?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가? 이렇게 뭔가 샛길로 갈 때 두려움이 밀려온다. 괜찮아. 가자. 루미씨는 배낭을 추스르고 호텔을 향해 갔다. 공간지각력이 매우 떨어지는 루미씨는 자동차 내비를 헷갈려하듯이 구글 맵을 잘 못 보기도 하고, 운전위주로 길을 알려주는 바람에 돌아 돌아 가느라, 발바닥에 불은 났지만 덕분에 시카고 시내를 앞당겨 구경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커피 외에 먹은 게 없다. 배도 고프고, 내일 아침 예약한 시카고 강 크루즈 투어장소를 알아둘 겸 숙소를 나섰다. 시카고 시내의 이정표는 트럼프 타워다. 바로 앞이 시카고강의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는 중심이다. 보스턴 입국할 때 프리패스하는 퍼스트 클래스 좌석의 사람들과 여기 시카고에서 트럼프 타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런 데 돈을 쓰면 좋을 텐데…
1800년대 지어진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는 건축의 도시 시카고. 건물마다 돈, 도전정신 그리고 가치에 아낌없이 투자한 건축물들이 그 자체로 예술품인 시카고. 하지만 거리의 정원을 이루는 꽃들은 죄다 조화다. 날씨 때문인가 겨울을 나는 나무와 잔디 정도만 자연물이다. 트럼프타워 앞의 멋진 정원까지 조화라니… 이게 뭐지? 정말 실용적인 나라군. 사시사철 똑같은 꽃이 피는 정원을 보는 기분은 어떨까? 가끔은 만져서 확인한다. 어쩜 진짜 같네.
드디어 어두워진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오니 배도 고프고 맥주가 마시고 싶어 숙소 근방의 적당한 식당을 찾지만, 쉽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식당이나 편의점이 많이 있지도 않다. 몇 군데를 기웃거리다, Pub에 들어갔다. 일단 입구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하지 않으면 나오곤 했는데, 이번엔 일단 맞아주는 직원이 친절하다. 가뜩이나 영어도 못하는데, 안내직원이 경직되어 있으면 더 이상 뭔가를 부탁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로 배를 채우고 팁도 두둑이 주고 숙소로 왔다.
일단 혼자가 된 첫날은 한바탕 울어야 한다. 스페인에서 그랬고, 오늘도 또 그런다. 왜 여기서 이렇게 외롭게 있어야 하는지,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글쎄 뭐가 서러운 건지... 삶은 서럽고 외로운 거라는 걸, 잊지 않으려 이러나?
한바탕 의식을 치르고 나면, 겁 많은 루미씨는 곳곳에 불을 켠 채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