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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Aug 23. 2024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문학동네, 2019. 박경희 역

‘마침표는 문장을 끝맺을 때 쓰는 문장 부호로 문장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 주는 부호이므로, 한 문장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 주어야 한다.’(출처 : 네이버 어린이백과) 한참 한글 문장을 배우던 초등 저학년 시절, 마침표를 안 찍어 시험점수가 깎이거나 손등을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표의 절대적 지위는 영어에서도 빛났다. 문장의 끝에 「. 」을 안 찍으면 절대 안 된다며, 강조를 하던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영어 실력보다 마침표 찍는 게 더 중요한 과업인 듯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숭배하던 마침표가 없는 이 책은(물론 10여 개 남짓 마침표가 있긴 하다) 단절되지 않고 물 흐르듯 흐르는 문장으로 우리를 삶과 죽음의 너울로 안내한다.


홀멘이라는 작은 섬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고 태어난 요한네스, 그는 너무 외진 곳인 홀멘을 떠나 조금 더 큰 섬으로 이주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일곱 명의 아이들은 모두 장성했고, 아내 에르나도 친구 페테르도 죽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요한네스는 몸이 너무 가볍고 무게가 거의 없는 듯 일어나서, 스스로는 평소처럼 아침을 보낸 후 밖으로 나오지만, 주변 모든 것이 너무 무거운 동시에 믿을 수 없이 가볍다, 이상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요한네스는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노처녀 안나 페테르센을 만나고 마르타와 에르나도 만난다, 요한네스는 평소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지만, 다시 페테르와 몇 가지 여정을 함께 한다, 요한네스는 집에 가는 길에 막내딸 싱네를 만난다 ‘싱네, 싱네, 내가 안 보이는 거냐? 싱네는 마주 다가와 그의 몸 한가운데로 쑥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를 통과해 지나친다, 그는 싱네의 온기를 느낀다’(본문 p114)     


목적지가 없나? 없네, 위험한가? 위험하지는 않아, 아픈가?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영혼은?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좋은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본문 p131-132) 그렇게 요한네스는 제일 친한 친구였던 페테르의 도움으로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한,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는 고요한 곳으로 간다, 안녕 싱네     


이 책은 아침 그리고 저녁, 태어나서 살다 죽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울고, 너와 나, 여기와 저기 등 대칭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라는 원형적 사고를 요한네스의 탄생과 죽음의 여정을 통해 이야기한다


Ⅰ부 아침은 삶이 시작되는 탄생을, Ⅱ부 저녁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다룸으로써 삶과 죽음이 마치 아침과 저녁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마침표(단절) 없이 써내려 간 짧고 멋진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죽음이 덜 무서워지길 바라며 썼다"(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D81DIE2HD) ​고 한다, 작가의 바람처럼 나는 아침마다 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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