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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사랑과 이별, 그 씁쓸함에 대하여

by Rumi

백영옥, 위즈덤하우스, 2016.


‘내가 본 실패에는 늘 아름다움이 있었다.’ (p277, 작가의 말 中)


2010년 즈음의 뉴욕 맨해튼. 예술가를 꿈꾸는 조성주와 그를 둘러싼 정인, 마리, 수영이 각자의 자리와 시간에서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증언한다.

(이) 정인 – 한국에서는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했고, 이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정인은 NYU 부설 아카데미 중 하나인 ‘실패한 예술가들’(부제)에서 조성주를 만난다. 두 사람의 만남이라기보다, 정인은 강사인 김수영을 사랑하는 조성주를 쫓는다. 그렇게 정인은 성주와 마리가 세놓은 집에 한 달간 머무르며, 애인의 애인인 마리가 성주를 위해 짜던 스웨터를 마리의 스웨터로 다시 짠다. 브루클린 라거 맥주를 마시며….


(장) 마리 - 아홉 살에 미국으로 온 마리는 처음 2년간은 부모 없이, 그 이후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 없이 살아내며, 미국 영주권을 가진 예술품 전시기획자가 된다. 그리고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에서 신인 작가 성주를 처음 만난다. ‘그는 이곳에선 이방인이었고, 떠나야 할 날이 정해진 노마드였다.’(p128) ‘불법체류자가 되기 직전의 커플이 고아처럼 벌이는 무국적의 결혼 풍경, 그 속에 우리가 있었다.’ (p140) 성주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매번 실패한 마리는 애인의 애인인 수영을 발견하고, 성주와 결혼을 마무리하며 한 달간 서블렛을 주었던 집으로 돌아와 스웨터를 입는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이정인.


(김) 수영 – 시각예술 분야 학자인 김수영. 세 명 중 유일하게 애인의 반열에 조성주를 두지 않지만, 뒤의 '애인에게'가 향하는 곳에 놓인 여성이다. 수강생 정인에 대해서는 '할머니 연작 – 알음'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를 찾아낸 마리는 “결혼이 뭐라고 생각해요?”라고 묻는다. (중략) 결국 나는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p243) 쌍둥이를 임신하고, 유산을 하며 남편은 애인의 침대에서 전화로 소식을 듣는다. 수영은 스스로에게 마리의 질문을 한다.


작가가 글을 잘 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양한 콘셉트를 편안하게 전달하는 박학다식함 또한 작가의 재능 중 하나이리라. 작가가 실패(?)로 끝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로 누군가인 독자를 위로하고자 했음도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더 외로워지는 걸까? 결국 나와 다른 이별의 수준을 발견한 무릎 꺾임일까? 또? 이제 그만 내려가고 싶은데…


나는 이별 전, 후로 말 문이 '턱' 막혀버렸다. 이걸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혹여 말하더라도 이 또한 이상한 ‘언어’가 되기 일쑤였다. 결국 입을 닫아버렸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저리 ‘언어화’할 수 있다면, 뭐가 그리 어려울까? 삶에 셔터가 내려진 전, 후의 상황과 원인과 결과를 들여다보고 ‘언어화’할 수 있어도 실패일까? 내게 「애인의 애인에게」는 위로와 공감보다는 무언가(이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아쉬운, 씁쓸함을 여운으로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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