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비인가봐’, 그리고 현철>

by 성대진

누구나 인생살이에서 어려웠던 순간을 회고하면 상당수는 사랑의 고백 시간일 것입니다. 그 고백까지 걸렸던 시간은 무척이나 길기도 하지만, 그 짧은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순간이 엄청나게 힘이 들었던 경험이 새로울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이 힘이 드는 것은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그 상대방이 나를 사랑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진지한 고백을 조롱하고 모욕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백이란 영혼을 걸고 내리는 어려운 결단입니다. 사랑이란 나비처럼 소리없이 다가와서 나의 실존을 허물 수도 있는 골칫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현철은 ‘사랑은 나비인가봐’는 사랑의 얄궂은 속성 중의 하나를 절묘하게 포착하여 경쾌한 트로트 리듬으로 풀어냈습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이후에 트로트 가수 현철의 입지를 다진 곡입니다. 그 이전의 현철은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팝과 가요를 두루 부르는 무명가수로 오랜 기간 고생을 한 입지전적인 가수입니다. 바로 이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바탕으로 고 송해 옹이 진행하던 ‘전국노래자랑’ 가수로 등극을 했습니다. 둘은 각각 ‘전국노래자랑’의 ‘간판MC’와 ‘간판가수’로 오랜 기간 동고동락을 했고, ‘국민MC’와 ‘국민가수’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나란히 작고를 하면서 국민의 애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철이 왜 국민가수로 등극했는가, 하면 바로 트로트 가수였다는 사실을 빼고는 달리 설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Syon6fxhaA&list=RDHSyon6fxhaA&start_radio=1

트로트 리듬을 일부에서 ‘전통가요’라 부르는데, 그것은 오류입니다. 트로트 리듬은 전통 리듬이 아니며, 본래 일본의 엔카에서 유래한 장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왜 팝송에서는 트로트 리듬이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팝송은 물론 샹송, 칸소네 모두 트로트 리듬이 없습니다. 그것은 서양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고 일본인과 한국인의 정서에만 맞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까지 한국의 방송계와 연예계는 ‘일본베끼기’가 만연했습니다. 정서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후에 중국이 ‘한국베끼기’를 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년간 한중일은 문화교류가 행해져서 유사한 정서가 형성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한중일 모두에게 인기가 뜨거운 ‘삼국지 연의’는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을 연상하면 쉽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천명하면서 방송계와 연예계가 강력하게 반발한 것입니다. ‘일본베끼기’를 오랜 기간 해왔던 치부, 그리고 앞으로 베끼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정이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에 소극적을 넘어 반대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개방을 하자 한민족 특유의 신명나는 놀이문화가 더욱 번성을 하여 K-한류가 일본을 거꾸로 침입했습니다. 이제 일본에서는 ‘한국베끼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히트 컨텐츠를 대놓고 베낍니다. 한국에서 히트를 하면 중국에서도 히트한다는 것이 경험칙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트로트 리듬, 그리고 현철로 돌아옵니다. 일본의 엔카는 물론 한국의 트로트 가요 모두 사랑과는 영혼의 결합체입니다. 리듬 자체가 영혼을 울리는 정서적 속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엔카는 후회, 이별, 눈물 이 세 단어를 빼면 노래 자체의 완성이 불가능합니다. 그 근본 기저에는 당연히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의 트로트 가요는 도 어떻습니까! 상대방에게 화끈하게 고백도 하지 못하는 사랑이 나도 모르게 나비처럼 찾아 온 그 낭패의 순간을 해학적으로 풀이한 노래가 바로 ‘사랑은 나비인가봐’입니다. 유쾌한 리듬 속에서 마냥 즐겁지 않은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멀리 고려속요 ‘청산별곡’ 속의 해학적인 정서가 한민족의 DNA에 유전된 것입니다. 현철은 갔어도 그의 대표곡 ‘사랑은 나비인가봐’는 노래방에서 무수히 많은 아재의 노래 속에서 그 정서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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