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 Jun 06. 2021

오만과 겸손의 그 어디쯤

모든 것은 나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어떤 벽을 마주하거나 한계를 맛보았을 때 전부 내 탓으로 돌리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내가 조금 덜 게을렀다면, 열심히 했다면..'이라는 후회를 하면서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지경이 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끔은 이 치우친 선이 나를 괴롭게 만들어 숨통을 옥죄는 날이 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인 채로 살아가는 그런 날들.


어느 날은 버텨내기가 힘겨운 날이 있었다. 억울함이 생긴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게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이래야 하는지...' 피해의식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서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억울함의 소용돌이에 나 자신이 더 초라해져 마음을 다스리고자 책 하나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우연히 집은 책에는 모난 나에게 딱 들어맞는 내용으로 위로를 건넸다.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어쩌면 일종의 오만함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여기는 것이 난 겸손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종의 오만함일 수 있다니..!! 


오만함과 겸손함은 상반되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여태까지 난 그 단어를 혼동하며 살았던 것이다. 다 내 탓으로 여기는 것을 반대로 말하면 어떤 일이 잘 되었을 때는 모두 내 덕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가..!! 난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교만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 탓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되었을 때는 그 일이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함께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고, 어쩌다 온 행운이라는 능력이 작용하여 이루어진 것일 테니 말이다.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나의 잘못도 있겠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불행이라는 능력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또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을 테니 모든 것이 나의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겸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잘못을 깨우칠 필요도 있고, 내가 무엇인가를 잘한 일에는 스스로 칭찬할 필요도 있다. 겸손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잘되었을 때는 나와 동료들을 치켜세우고 잘못했을 때는 깨우치되 지나치지 않는 것. 즉, 과도한 선을 넘지 않으며 스스로를 가르치는 일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지나친 잣대를 세우지 않고 겸허히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니 말이다. 자신의 모난 부분도, 잘난 부분도 받아들이고 오만함이 아닌 겸손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오려면 이 또한 내가 견뎌내야 할 배움이다.

작가의 이전글 [보통의 일상 0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