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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Dec 05. 2022

어머니와 나의 '점심 수다'

어머니의 열무김치와 동지팥죽




"역시 어머니표 열무김치 만한 게 없어요. 제아무리 맛있다는 열무김치도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그것과는 비교가 안돼요. 요리깨나 한다는 애들 엄마도 어머니 열무김치는 따라갈 수가 없데요. 최고 중에 최고랍니다. 어머니."


"오늘 점심때 팥칼국수를 보니 어머니가 해 주시던 동지팥죽이 생각났어요. 어머닌 해마다 커다란 알루미늄 양동이가 가득하도록 새알 동지팥죽을 끊여서 온 식구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 다 함께 나눠 먹게 했었잖아요. 사람들이 어머니 손 크다고 하는 걸 자주 들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머니 손이 어머니의 마음만큼 컸던 것 같아요."


"어머니 목소리가 이렇게 짱짱하고 또렷하니 어머니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어 보여요. 기억력도 여전하시고. 어머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래서 예전에 사람들이 어머니 머리 좋다고들 했었나 봅니다. 전 어머니가 여전히 맑은 정신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게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모두 내가 어머니께 드린 말씀이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몇 분 동안 수다를 떨면서 하는 이야기이다. 이 전화 수다는 점심시간이 되면 내가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인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이년 째 계속하고 있는 습관같이 된 행동이다.


어머니는 고향인 지방의 한 요양병원에 몇 년째 입원해 계신다. 코로나가 닥치면서 외출, 외박, 면회까지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답답함을 덜어 드리려고 시작한 게 매일매일 전화를 드리는 것이었다.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 반찬은 무엇이었는지, 보내드린 과자나 간식거리는 아직 남아있는지 부터 시작하여, 운동은 하셨는지 - 병원 복도를 보행보조기의 도움을 받아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  몸에 별 탈은 없는지 등 몸 안부를 묻는 것으로 전화 수다는 옮겨간다. 이어서 큰 손주가 엊그제 해외출장을 갔다느니 작은 손주가 제과 자격증을 따서 이제 집에서 맛있는 과자나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어 다음번에 뵐 땐 손주가 만든 빵을 맛보시게 될 거라는 등 가족들의 신변 근황 소식이 수다의 다음 테마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매일 계속되는 이런 식의 전화 대화의 내용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무엇인가 특별한 스토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특별한 얘깃거리 연구(?)의 성과로 내가 찾은 것은 어머니의 리즈 시절 빛나던 것들을 찾아 하루에 하나씩 끄집어내어 이야기에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몇 마디 칭찬을 양념으로 뿌려 입맛을 돋우었다. 앞에서 소개한 내가 어머니께 한 말씀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렇게 날마다 하던 수다에다 특별한 스토리 하나를 더해서 전화 대화의 맛을 돋우었다. 그랬더니 보통은 덤덤하게 대답하시던 어머니의 반응이 달라졌다. 젊은 시절 멋졌던 어머니의 모습이 등장하면 어머니의 전화 속 목소리의 옥타브가 올라가고 말씀의 길이도 더해졌다. 오랜만에 신이 나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그런 날의 수다는 항상 여느 때 보다 길고 활기차게 끝을 맺는다.


전화 수다가 끝나면 나는 곧바로 연구를 다시 시작한다.


"내일은 어떤 어머니의 모습을 등장시키지?"


한참을 생각 속에서 걷다 보면 나의 점심 산책도 끝이 난다.



어머니는 점심때가 되면 내 전화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나도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예전의 그분 그 대단하셨던 우리 어머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총총하신 어머니가 계셔서 좋다.

점심 때면 내 전화를 기다려 주시는 어머니가 계시니 좋다.

그냥 어머니가 계시는 것이

나는 좋다.


오래오래
어머니와 점심 수다를 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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