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 간단히 감별해 보자
바로 지금 내게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까?
혼자서 걷는다든지 버스나 지하철에 혼자 앉아있는 것처럼 온전히 혼자인 상태가 되면 나도 모르게 혼자의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혼자의 속에서 누군가를 만난다.
며칠 전이었다. 퇴근길에 지하철역을 향해 혼자 걷다가 문득 내 속 세상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아내였다. 아내가 특유의 기분 좋은 표정- 눈을 오뚝한 이마 쪽으로 치켜떠 크게 만들며 입가로 골이 있는 미소를 짓는 아내가 기분이 좋을 때 보이는 표정 -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눈인사에 나도 미소로 대답을 보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말없이 그냥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보니 잠시 후 내 몸에 반응이 왔다.
내 눈가에 얇게 맺힌 이슬이 느껴졌고, 가슴 한편에는 먹먹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안쓰러움과 짠한 느낌이 함께 찾아들었다. 분명 내 얼굴은 웃고 있는데 내 속에서는 그것과 다른 감정이 일고 있었다. 얼굴의 표정과 마음의 속내가 달랐던 것이다.
그 감정의 작은 소용돌이는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봄날의 아지랑이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솜털 같은 온기가 잔향처럼 남겨졌다.
짐작건대, 잘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은데 그러하지 못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 바람을 다 채우지 못한 나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나 자신에게 느끼는 아쉬움을 담은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감정들이 모두 슬픈 정서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 감정을 마주하는 나의 마음은 전혀 싫거나 거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슬픔은 슬픔이 아닌 것이다.
한 마디로 소중한 사람에게 느끼는 안타깝고 애태우는 감정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내 마음의 소용돌이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아내에게만 느끼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는?
딸들부터 시작해 보았다. 그다음 다양한 인연의 여러 사람들을 차례차례 한 사람씩 내 속 세상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대면해 보았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같지 않았다. 비슷한 종류라 할 수 있는 감정도 그 온도와 농도에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의 소용돌이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사람 사람을 가려서 그 크기와 깊이를 달리하여 나타났다.
결국 내 속에서 대면한 그 사람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종류와 농도가 달라졌다.
또 하나,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못내 안타깝고 마냥 짠한 감정을 더 진하게 느꼈다. 안타까움은 내 능력의 부족에 대한 감정이고, 짠한 심정은 해주고 싶었던 것을 해주지 못한 소중한 사람을 향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감정의 종류와 소용돌이의 크기가 소중한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이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얼마만큼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자.
먼저,
소중함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운다.
나의 경우 아내를 그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평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사람을 내 속 세상으로 한 사람씩 소환해서 대면해 보고, 그중 가장 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소중한 사람 감별기준자'로 삼자. 나처럼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남편, 부모 중 누구, 절친이라고 지칭되는 친구,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 소위 애인이나 남친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등 누구든 가능하다.
다음,
감별할 사람을 내 속 세상으로 초대해 대면한다.
그다음,
대면을 통해 느끼는 감정을 파악한다.
그를 보며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인가?
안타까움? 짠한 마음? 가슴 먹먹?
아니면 이것 말고 어떤 감정?
이어서,
느낀 감정을 감별기준자의 그것과 비교한다.
비슷한 감정인지? 느낀 감정의 크기가 감별기준자의 그것과 비교해 더 큰지 작은지?
마지막으로,
그 비교 결과를 해답으로 받아들인다.
나의 감별기준자- 내겐 아내이다 -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게 나왔다면 일단 그는 내게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크기와 농도에 따라 소중한 정도를 판단하면 된다.
소중한 사람을 감별하는 기준을 세우고 나면, 그 기준이 된 사람에게서 느낀 감정과 비교만 하면 되는 것이니 별로 어려울 게 없다. 상대평가만 해보면 된다. 간단하다.
지금, 바로 오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한 번쯤 살펴보면 어떨까?
그런데, 소중한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바뀔 수 도 있다. 지금 소중한 사람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소중한 사람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소중한 사람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 감별한 소중한 사람은 바로 오늘 내게 소중한 사람을 말한다. 내일의 소중한 사람은 내일 또 감별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나의 감정이 잘 변하지 않는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시간이 그렇게 만든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만났던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정의하고 정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믿든지 말든지의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이 감별방법으로 소중한 사람을 판단한 것에서 문제를 만난 적이 없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자신에게 솔직하기만 하다면 그렇다.
이 감별법은 솔직하게 자기를 자신에게 고백하고, 솔직히 보이는 대로 판단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 솔직할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자신에게 솔직할 자신이 있다면,
한 번쯤 사용해 보기 바란다.
예상과 다를 수 있다.
솔직히 내게 소중한 사람 말이다.
오늘은 소중한 사람을 업데이트하는 날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퇴근길에 다시 한번 아내를 내 속 세상 속으로 초대해야겠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업데이트해야겠다.
중간중간 업데이트는 컴퓨터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