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위를 바란다면 과욕?
얼마 전 큰 딸이 내게 건넨 질문이다.
딸의 질문을 받고 보니, 지금껏 딸들의 인생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딸이 결혼하면 만나게 될 사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어떤 사위를 기대하는가?
장인인 내게 사위는 어떤 존재이길 바라는 걸까?
딸과의 관계가 아닌 나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솔직한 나의 마음을 고백해 봐야겠다.
이런 전화를 하는 아들 같은 사위, '아들사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소주 한잔 앞에 놓고, 아들사위의 고단한 직장생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무거워 보이는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둘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적당한 때 내가 먼저 취해주고, 못 이기는 척 아들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함께 걸어가면 좋을 것 같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따라나서는 부지런한 아들사위도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어디든 같이 걸으며, 지나가는 풍광이 던져주는 것들을 주제 삼아 생각을 나누어 보는, 그런 걷기 친구, 아들사위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둘이서 걷는다면 시간 가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그냥 발길을 옮길 것 같다.
가족과 한 차로 움직이는 여행길이면, 운전은 언제나 나의 역할이었다.
이제 내 차의 운전대를 믿고 맡길만한 아들사위 한 명쯤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내와 딸 둘 모두 면허증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운전대를 아내나 딸들에게 넘기지 못했다.
믿음직한 아들사위 하나 생기면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에 남자는 나 혼자이다. 집안에서 작은 논쟁이 있다 보면 어느새 3:1로 나만 혼자인 경우가 많다. 여자 셋과 남자 하나로 의견이 갈리는 경우이다. 나는 늘 그 3:1을 즐겼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편이 있어서 혼자가 아닐 때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들사위가 하나 늘면 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딸만 있는 집에서 사는 나는 목욕탕에 간 일이 없다. 어디든 탕이 있는 곳에 가면 나만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등을 밀어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갔을 때 말고는.
아들사위 하나 생기면 목욕탕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 거기서 내 등을 맡겨보고 싶다.
생각나는 욕심을 나열하다 보니,
아들 같은 사위, 아들사위가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아들사위를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위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노력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하는 진심이 담긴 노력이 필요하리라.
마음의 문을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는 양쪽이 다 열려야 통하는 것이다. 한쪽만 열려 있다면 그것은 입구만 있는 동굴일 뿐이다. 마음을 소통하려면 양쪽이 다 열려있어야 한다.
나는 사윗감이 생기면 처음부터
내가 먼저 문을 열 생각이다.
멋지고 듬직한 다 큰 아들 하나 선물 받았다 여기고 겉옷 벗어던지고 대할 생각이다.
새로 생긴 아들사위가 편하게 자기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내가 우리 딸을 아끼고 응원하여 왔듯이,
아들사위도 그렇게 똑같이 해줄 생각이다.
그래서 아들사위가 편하게 우리 가족의 문화 속으로 들어와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백년손님이 되어 어정쩡하고 어설픈 자세로 거실 한편에 서있는 그런 사위 말고,
현관에 들어서면 그냥 아무 데고 널브러질 수 있는 그런 아들사위를 만들고 싶다.
지금껏 장인어른과 둘이서만 하는 술 한잔 마셔보지 못했다.
그분을 모시고 목욕탕 한번 가지 못했다.
그분과 등산 한번 걷기 한번 가지 못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어서, 더욱더 그것이 슬프고 죄송하다.
그런 전화 한번 드리는 걸 못해 봤다.
그렇게 따뜻하고 넓은 분 한테 그랬다.
그래서 난 참 못난 사위였다.
지난 30년, 그 많은 세월 동안 사위로 살아온 나는,
안타깝게도 늘 백년손님이었다.
참 바보 같은 30년이었다.
나는 새 아들을 얻으려 한다.
나는 장인어른이 되는 걸 거절한다.
아버지가 되려 한다.
이야기가 되는, 술 한잔 마실만한 그런 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딸 덕분에 다 큰 새아들 한번 얻고 싶다.
마음이 따뜻한 아들이면 더 좋겠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장래 내 사위가 될 친구에게 물을 것이다.
더불어, 딸에게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