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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Apr 20. 2019

걷자, 소중한 것이 소중해 진다

한 걸음에 하나씩 내가 가진 보물을 세어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스마트폰을 켜고 날씨정보 앱을 열어 보는 것이다.


오늘의 날씨이다. 

시간대 별 날씨, 기온, 강수확률, 강수량, 풍속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꼭 거쳐가는 것은 미세먼지 정보이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등의 예보이다. 

파란색 '좋음'과 녹색의 '보통'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만나는 세상의 첫 번째 뉴스가 미세먼지인 것이다.

이번 봄에는 유독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다 보니 이런 습관이 들었나 보다.



얼마 전에는 며칠씩 '매우 나쁨'을 계속 보이던 날씨가, 갑자기 '좋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 갑자기 바빠졌다.

서둘러 편한 옷을 걸치고, 챙이 넓은 등산용 모자를 쓰고, 허리엔 작은 허리 가방을 둘러메고, 트래킹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 하늘이 잘 보이고 공기가 넉넉한 곳으로 향해 걸었다.

동네 옆 탄천길을 지나, 넉넉하게 활짝 펼쳐진 한강 고수부지까지 그냥 걸었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며, 고개를 쳐들어 파랗게 채색된 높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참 예쁘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그냥 좋다.

상쾌한 공기를 가득 마시니 기분이 좋다.

파란색 맑은 하늘을 보니 가슴이 상쾌하다.

따스한 봄볕을 넉넉히 쐬니 마음까지 따뜻하다.


이 땅에 살았던 옛사람들도 이렇게 행복해했을까?

아마도 요즘의 우리들 만큼의 고마움을 느끼진 못하였으리라.

나만해도 몇 해전까지는 이 정도의 맑은 공기 예찬자는 아니었으니까.


공기 좋은 날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걷다 보니,

기분 좋은 일들만 생각난다.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씩 내 눈앞에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내키는 대로 어디든 걸어갈 수 있게 해 준, 건강한 다리가 얼마나 고마운가.

아직도 생각나는 것을 그냥 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또한 얼마나 고마운가.


언제나 편안하게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아내가 고맙고,

잘 커서 예쁜 숙녀가 되어있는 딸들이 고맙다.

귀를 간지럽히는 우리 집 여자들의 잔소리가  가득한 우리 집이 좋다.


보고 싶어 전화하면 '아이고 우리 아들'이라고 불러주시는 어머니가 고맙다. 비록 병원에 계시지만 그런 어머니가 아직 이 세상에 계셔서 너무 고맙다.

비록 먼저 가셨지만 예쁜 추억들을 많이도 남겨주신 아버지도 고맙다. 

가끔씩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옛 기억들을 되새기며 웃을 수 있어서 좋다.


만나면 언제나 맛있게 술잔을 부딪쳐주는 오래 묵은 친구들이 고맙다. 

불청객 슬픔이 올 때면 전화 한 통에 같이 모여 함께 푸념 늘어놓는 친구들이 고맙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친구 많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리고 지금 나를 만나주고 얘기 나눠주는 소중한 모든 사람들이 고맙다.

한 명씩 한 명씩 모두 고맙고 너무 좋다.


이렇게, 

미세먼지는 나를 생각 속에서 걷게 만든다.

그러면서 저 구석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것들을 차근차근 다시 내 앞에 살리어 낸다.


그 소중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던 내게 그것을 다시 느끼게 한다.

매일매일 일상으로 주어졌던 소중한 것들을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게한다.

너무 많고 고마운 축복 속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이렇게 축복받은 나이건만, 그것도 모자라다고 슬퍼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한쪽에서만 바라본 인생은 진짜가 아닌 반쪽의 그것인 것이다.

온전히 보려면, 앞에서만 보지 말고, 옆에서도, 뒤에서도 바라봐야겠다.




문득, 취준생 노릇에 힘겨워하는 딸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네가 많이 힘들겠지만,

한 발자국만 물러나 지금의 너를 본다면 다른 네가 보일 것이다.


너는 지금,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청춘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너에겐 지금, 

혼자서 열심히 일구어 낸 값진 대학 졸업장이 준비되어 있고,

오랫동안 쌓아 올려 제법 구색이 맞춰진 음식 블로거의 식견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너에겐 지금,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가 네 곁에 있다.


그리고, 너에겐 지금,

네 속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벌써 여럿 있다고 했지.


고개를 돌려보아라.

너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행복한 존재들이 보일 것이다.




아빠는 네게 말하고 싶다.

미세먼지가 물러난 날을 만나면, 
그냥 밖으로 나가 걸어보라고.

그리하면,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이 네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려 줄 것이다.


네가 한번 걸어보면 좋겠다. 
맑은 공기로 심호흡도 해보고, 
두 눈을 크게 해서 파란 하늘도 담아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너도 아빠가 지금 외치는 소리를 똑같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맙습니다, 모두 다. 
오늘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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