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먹혔다고? 이젠 비싸게 모실 사람"
요즘 저는 잠시 쉬면서 직장도 알아보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나만의 콘텐츠도 준비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제 아내입니다.
아내와 저는 같은 회사에 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며 잦은 출장과 전시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아내는 디자인 전공을 살려 회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장 짐을 챙기러 연구소에 들렀습니다.
그날 저는 아웃렛에서 저렴하게 산 검정 코트를 걸치고 후다닥 다녀왔는데,
아내는 그때 저를 처음 봤다고 합니다.
"처음엔 외부 업체에서 온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근데...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죠.
“그때, 나름 귀엽더라.”
그 말에 속으로는 슬쩍 으쓱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아내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CEBIT’ 전시회를 앞두고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제품 디자인, 카탈로그 수정, 각종 자료 준비까지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랐죠.
전시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색했던 첫 대화는 곧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이어졌고, 저는 점점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말이 잘 통했고, 웃는 얼굴이 참 예뻤습니다.
자꾸만 눈길이 갔죠. 그런데 그녀가 꽤 멀리 산다는 소문이 있어 마음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제 집과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운명’이라는 단어가, 그날 처음 가슴에 내려앉았습니다.
어느 주말, 전시회 준비로 식사도 거르고 일만 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밥은 먹고 해야죠. 저녁 사드릴게요.”
처음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엔 만나기로 했습니다.
월급을 아껴 마련한 제 애마, ‘마티즈’를 몰고 그녀 집 앞으로 갔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제 인생 첫 까르보나라였습니다.
너무 느끼해서 이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참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녀와 함께였으니까요.
식사 후엔 영화도 봤습니다.
영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팝콘을 먹으며 웃던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날이 우리 첫 데이트였습니다.
아내는 집을 지키는 ‘세퍼드' 같은 스타일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외향적이라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찜질방도 가고, 마티즈를 타고 공원 산책도 자주 다녔죠. 연애 시절, 저는 거창한 이벤트보다 산책을 좋아했습니다.
순두부집에서 밥 먹고, 율동공원, 보라매공원, 일산호수공원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힐튼 호텔 커플데이에 데려가 줬는데,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라 어느 저녁 그녀를 그 자리에 데려갔습니다. 나름 멋져 보이고 싶어서요. 하지만 아내는 지금도 말합니다.
“나는 진짜 싸게 먹혔어~ 호텔에서 커피 한 잔 마셔본 게 다야. 공원 산책이 데이트의 전부였잖아!”
술도 못 마셔서 맥주집에서 맥주 한 병 시켜놓고도 다 못 마신 적이 있었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침을 자주 거른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날부터 그녀는 떡, 옥수수, 빵 같은 걸 손에 쥐여줬습니다.
“아침 꼭 먹고 다녀요.”
그녀의 작은 손에 들린 따뜻한 간식과 한 마디 말이,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곤 했습니다.
라식 수술로 회복 중이던 날, 통닭을 싸 와서 공원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아직도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참 기뻐하셨습니다.
그녀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친구 아버지 안 계시다니, 네가 더 잘해줘야겠다.”
그 말이 제 마음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저는 그녀를 더 잘해주고 싶었습니다.
집이 가까웠기에 아침마다 만나서 같이 걸어 출근하곤 했습니다.
같은 회사 커플의 장점은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단점은 싸우면 화해 전까지 회사 생활이 참 애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위기도 있었지만, 서로 기대며 결국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는 “무조건 아들!”을 원하셨고, 첫 아이가 아들이라는 소식에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원하는 거 다 해줄게!”
그 약속이 다 지켜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갑니다.
그녀는 첫아이를 돌보며 경력을 내려놓았고, 저는 그 덕분에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괜히 집에 있으면서 예민하게 굴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그런 제 모습에 자주 반성하게 됩니다.
아내는 요즘도 옷 만들기, 빵 만들기 같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 마음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재봉틀과 오븐이 놓인 아늑한 공간에서, 마음껏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싸게 먹혔다고 했지만, 이제는 ‘비싸게 모셔야 할 사람’이라고.”
그녀는 제 인생의 진짜 동반자입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사람.
나를 믿고 기다려주고, 토닥여 준 사람.
아내가 있었기에, 저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내, 나의 친구, 나의 인생의 동반자에게
쑥스럽지만 이렇게 말해봅니다.
여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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