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반에는 이 영범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고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는지 이혼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학교에 오면 항상 꾀죄죄한 옷차림에 거무 작작한 얼굴에 불괘한 냄새가 나서 아이들은 영범이를 보면 자기들끼리 수근 수근 거리며 영범이와 거리 두기를 했다. 더구나 숙제도 잘하지 않아서 선생님한테 혼나서 문제아로 찍히기까지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영범이는 밖에 문방구에 나가서 빵과 우유를 사서 혼자서 점심을 먹곤 했다.
어려서 철이 없던 나와 친구들은 이런 영범이를 보면서 영범이가 안쓰럽다는 생각보다는 문제만 일으키고 행동이 바르지 못한 아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영범이와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서 말도 걸지 않았고 영범이가 나에게 말을 걸면 그냥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피하곤 했었다.
영범이는 아이들의 편견으로 인해 스스로 노력해도 친구들의 무리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방과 후 친구들과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먼 거리에서 엄마(=나의 엄마)와 영범이가 같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는 영범이와 핫도그를 먹으면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영범이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영범이의 교회 선생님이었다. 엄마는 영범이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영범이의 사정을 안쓰럽게 생각해서 영범이에게 종종 간식도 사주고 도시락도 싸주곤 했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부모님과 같이 소풍을 갔던 날 영범이를 우리 자리에 데리고 와서 김밥과 음료수도 같이 먹었다. (엄마는 동네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노숙인에게도 저녁을 만들어 주는 인정 넘치는 사람이었다. 난 그런 엄마의 행동이 못 마땅했다.)
나는 엄마가 영범이에게 잘 대해주는 행동에 대해 못마땅했다. 이런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면 상대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친구들이 나를 영범이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영범이랑 가까지 지내면 안 돼, 제 도둑질도 하고 학교에서 매일 혼나고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야, 친구들도 그래서 영범이랑 가까지 지내려고 하지 않아."
나는 엄마에게 한 이야기가 얼마나 잔혹하게 영범이를 난도질하고 있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영범이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가끔씩 영범이가 생각이 날 때는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고 나쁜 길로 빠져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1996년 3월 대학 1학년 때 동네 제과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인데 낯이 익은 얼굴의 손님이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의 영범이었다. 여전히 마르고 까까머리에 거무 잡잡한 얼굴이라 곧 기억 속에서 소환이 됐다.
영범이는 초등학교 때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아직 이 동네 살고 있구나."
영범이는 반가운 듯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근황을 말해주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어. 그래서 지금 아내가 임신 중인데 아내가 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빵 좀 사러 왔어, 그런데 여기서 너를 보니 반갑네."
"엄마는 잘 지내셔? 어렸을 때 엄마가 많이 도와주셔서 고마웠었는데."
영범이는 엄마가 해주었던 행동들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음 엄마는 잘 지내고 계셔, 너는 잘 지내니?"
"음, 나는 OOO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어."
이 녀석 어렸을 때 나에게 얼마나 이런 사소한 말들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까?
나는 영범이 앞에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과거에 녀석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나의 나쁜 생각과 감정들이 미안하고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영범이를 다시 만난 적이 없다. 그래도 가끔 그 녀석이 생각나곤 하는데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이 녀석에게 가졌던 이유 없는 미움과 편견들이 용서받길 바라며, 나는 편견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