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친절하고 자상해야만 상대의 마음을 얻고 이로 인해 필요할 때 상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보다 1년 뒤에 입사한 동년생의 동료가 있었다. 나도 과거에 새로 입사한 직장에서 적응하는데 힘든 시간을 겪은 적이 있었고 나처럼 아이들을 키우며 힘겹게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동료의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가 직장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입사하면 업무 파악도 힘들뿐더러 원래 직장이란 곳이 경력직원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업무적 스트레스도 많고 입사 초기에는 동료들의 견제도심하기 때문에 잘 버티기가 힘들다
이 친구가 이곳에서 잘 버티고 살아남는 다면 나중에 이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도 있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만들면 나에게도 유익이 된다고 생각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업무 노하우를 알려주고, 이 친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커피도 사주면서 함께 담소도 나누곤 했다. 시간이 지나 이 친구가 업무에 익숙해졌을 무렵, 나도 이 친구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할 것이 있어 부탁을 했지만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거절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성의 없게 처리를 해주어서 곤란한 상황을 겪은 적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이 친구에게 잘 해준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식으로 보답을 하다니, 배신감이 들었지만 나는 너무 순수하고 이 친구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은 나머지 이 친구가 업무적으로 뭔가를 요청하면 잘 대응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친구에 대한 태도를 한 번 바꿔 보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업무적인 문의를 할 때는 시간이 없다는 투로 대충 대충 알려주거나 건성으로 반응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태도 변화로 인해 이 녀석은 나와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라고 내심 걱정도 했었고 업무를 대충 대충 알려준다고 상사에게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것이라는 염려도 있었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나의 태도 변화에 눈치를 챈 녀석은 불만이 쌓여서 나에게 따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나도 그에 대한 논리를 가지고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끝이 없는 소모전이 반복되고 나에게 반박을 해도 나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을 깨달은 녀석은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나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할 때 먼저 커피도 권하고 다가와 말도 걸면서 나의 기분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나에게 상대가 필요로 하는 능력이 있다면 나의 태도와 관계없이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을
알았으며, 상대에 대한친절하거나 배려 있는 태도가 상대로부터 관계를
두텁게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인간 관계 전략은 상대에게 선의(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발휘하는 배려, 친절 등)를 가지고 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관계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런 전략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선의를 가지고 상대를 대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로 표현이 된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직장생활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행위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다. 상대를 배려하고자 하는 태도는 은연중 상대를 나보다 우위에 놓게 되어 상대에게 끌려 다니는 입장에 빠지기 쉬워진다. 상대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지고 상대로부터 업무 협조를 받으면 당연히 여기기 보다 고마워해 하고 상사가 혼내더라도 다시 잘 대해 주면 나를 다시 인정해주는 것 같아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도 든다.
마음이 너무 약한 나머지 평소에 내가 상대를 잘 대해 주다가 갑자기 냉정하게 태도를 확 바꿔 버리면 상대가 나를 언짢아해 하고 관계가 나빠져서 상대로부터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상대에 대한 친절하고 자상한 행동은 목적에 관계 없이 바람직한 행동이며 약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권장해야 할 덕목이지만 상대에 대한 자상하고 친절한 행동이 상대에게 괜한 부담감을 줄 수 있고, 상대로 하여금 이 사람이 나한테 뭔가 아쉬우니 잘 대해준다고 생각을 품게 하여, 나를 얕 보이게 할 수 있는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잘 대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 사람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경을 쓸 바에는 차라리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게 미지근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 낫다. 상사의 비유를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 상사와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한 번의 실수로 관계가 틀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미션]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면 상대에게 동등한 보답을 기대하는가?
-업무적으로 도움을 받아야할 상대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주는 행위를
멈추면 상대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서로 업무적 협조 관계가 있는 직장동료에 대해서, 언젠가 도움을 받을
것을 대비해서 하는 직장 동료를 받드는 친절하고 자상한 행동을 멈춰보자.
동료의 요구에 친절하고 자상히 대응해준다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다소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보자.
반드시 요구의 목적을 물어보고 요구에 대해서도 곧 바로, 그리고 쉽게 응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은근히 내 비춰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