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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Aug 18. 2019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 싫었다.

 이웃집 아이 친구의 아빠로부터 저녁에 집에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늘은 아이 친구의 엄마가 회식을 해서 늦게 귀가하는 날이라 아이 친구의 아빠로부터 자기 혼자 아이랑 놀아주기 힘드니까 집에 와서 아이들끼리 서로 놀게 하자는 것이었다.


 아이 친구의 엄마와 아빠도 맞벌이고 아이의 엄마와 아빠도 맞벌이기 때문에 서로의 엄마와 아빠들은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반쯤 녹초가 되어 있고 아이들은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지 놀아달라는 투정을 부린다.


"너무 심심해,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싶어, 집에 있는 거 싫어. 장난감도 없잖아, 아니면 텔레비전 보여주던지 " 


 머리가 커진 아이는 사뭇 어렸을 때와는 달리 투정의 방법도 진화해서 이제는 엄마 아빠에게 조건을 걸고 협상을 하려고 한다.

 

 아이의 친구의 집에는 아이 친구의 아빠와 아이 친구 둘 뿐이었다. 아이 친구의 5살짜리 여동생도 있었지만 오늘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가 유치원에서 데리고 갔다고 한다.


 아빠가 2 명의 아이들을 엄마 없이 돌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여동생은 외할머니에게 맡긴 것이었다.

(나도 맞벌이라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지만 아치 친구의 아빠는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


 아이의 친구는 아빠가 새로 사준 보드 게임을 아이와 같이 하고 싶어서 아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이와 아빠는 저녁을 후다닥 해치우고 아이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저녁 7:30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1시간만 놀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다.


 초등학교 1 학년인 아이는 구체적인 시간 개념을 알지 못하지만 1시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신나게 놀아야 된다는 생각에 신발을 벗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손을 후다닥 씻고 친구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의 아빠와 친구의 아빠는 거실에서 축구 이야기, 정치 이야기, 회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10분 정도 후에 아이가 방에서 보드게임을 말다 나오더니 주먹만 한 얼굴에 울상을 지으며 아빠에게 말했다.


"친구가 나랑 보드 게임 안 하고 책만 읽고 있어."


 아이 친구는 자기 방에서 아이와 보드 게임을 하다 말다 책꽂이의 책을 빼서 읽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기를 초대해준 친구에게 몇 번이나 보드 게임을 하자고 타일렀지만 친구는 책 삼매경에 빠져 보드 게임에 신경을 끊은 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아빠는 아이의 친구가 책만 읽는 것에 불평을 토로하는 아이가 귀여우면서도 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빠의 아이도 친구처럼 책을 많이 읽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공부는 제쳐두더라도 아이가 텔레비전이나 게임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책이라도 잘 읽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아빠는 집에 텔레비전도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빠는 집에 오면 책을 읽기보다 스마트 폰을 하는 시간이 많다. 직장 생활, 가사, 육아는 피곤하기 때문에 책을 손에 들 여유도 없고 책을 읽자니 어떤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고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수많은 활자들과 전쟁을 해야 된다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아빠도 책을 읽지 않는데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아이에게 어른의 일방적 논리로 아이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힘없는 아이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자신이 하지 않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어른인 아빠로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육아는 힘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육은 육아보다 한 차원 힘든 노동이다. 육아는 아이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어른이 도와주면 되지만 교육은 어른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고 어린 시절을  보내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 아빠의 모습과 아빠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그것이 성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공을 한다는 것이 행복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가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책을 많이 읽든 읽지 않든 상관없이 아빠의 잘못된 행동을 아이가 그대로 답습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스마트 폰을 끄고 책을 책상 보이는 곳에 놓고 하루에 한 장이라도 읽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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