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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Aug 11. 2019

아이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8살 남자아이는 개구쟁이 짓을 많이 하고 다닌다. 항상 장난기 어린 웃음이 얼굴에 만연하고 웃음소리가 여름 아침 매미 울음소리보다 청쾌하고 생기가 흘러넘친다. 그런데 이 녀석에게는 한 가지 고민 거리가 있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안 한다고 아빠한테 잔소리를 자주 듣는 것이다.  


 아파트 정문을 들어오고 나설 때마다 만나는 경비 아저씨, 아이스크림을 사러 갈 때마다 들리는 편의점 삼촌, 교회에 갈 때마다 만나는 교회 삼촌들과 이모들에게 아빠는 항상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먼저 인사를 하는데 8 살 아이는 어른들과 마주치면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어른들이 먼저 아이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해도 어른들의 애써 보여준 호의를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는 아이를 보는 아빠는 아이에게 답례를 거절당한 어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아이가 커서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예의 없는 아이가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하지 않은 아빠는 아이가 좋아하는 수퍼 마리오 게임을 20분 동안 시켜주는 조건을 걸고 앞으로 어른들을 보면 웃으며 인사를 하기로 아이로 부터 약속까지 받아냈는데 아이는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옛날 아빠의 아빠(아이에게는 할아버지) 같았으면 버릇이 없다며 당장에 아이에게 매를 대고 버릇을 고쳐줄 궁리를 할 테지만 아빠는 할아버지의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왜 아이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어린이 집에서 요즘 세상이 무섭다 보니 낯선 어른들을 경계하고 주의하라는 교육을 받아서 일까?


아빠는 아이에게 "무조건 인사 해" 라고 명령하는 것 보다 먼저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아빠가 못미더웠는지 처음에는 대답을 회피하다가 10분간 텔레비젼을 보여준다는 조건으로 아빠의 궁금중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른들한테 인사하는게 쑥스러워"


아이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쑥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 숫기가 없긴 하지만 인사를 하는 것조차 쑥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아빠는 약간은 의아해 했다. 그런데 이해가 간다. 별로 관계가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내성적인 아이에게는 모험이고 두려움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아이가 어르들에게 인사를 하면 어른 들은 아이에게  "귀엽구나" 하고 답례를 하곤 했는데 아이는 "귀엽다"는 말이 듣기 싫다고 한다.


"나도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고 여동생도 있는데 동생 앞에서 어른들이 나한테 귀엽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나빠" 라고 하며 그 조그만 입으로 그동안 쌓인 불만을 토로했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 아빠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는데 세상 어른들이 공통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잣대(그것이 예의든 상식이든)에 맞추어 아이도 그대로 따르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아빠의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아빠는 사람 간의 기본적인 예의를 아이가 따라주기를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공부나 행동을 강요한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아이에게 인사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명령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이 부분은 아빠의 사고방식을 좀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불 8살, 아직 2자리 수가 안된 어린 나이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존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8살 수준 만큼의 자존심도 있어서 그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런 자존심은 아빠가 지켜주고 존중해줘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인사를 강요한다면 아이는 아빠에 대해서 반항심을 갖게 될 수 있고 서서히 아빠와 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 어른에게 인사하라는 것에 대해서 강요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요하지 않더라고 아빠가 계속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면서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자유롭게 키워서 아이가 무분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빠로써 바로 잡아줘야  마땅하지만 어린 아이일지라도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여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행동에 선택권을 부여는 것도 8살 아이를 둔 아빠가 성실히 고민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아이는 편의점 아져씨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편의점 아져씨에게 인사를 하고편의점을 나오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저 아저씨가 참좋아, 너무 친절해" 

이 말을 들은 편의점 아져씨도 편의점을 나가는 아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네가 참 좋아, 넌 너무 똘똘해" 


 비가 온 뒤의 11월 추운 밥이었지만 나는 아이와 편의점 아저씨의 얼마 안되는 짧은 말 속에 내가 사는 세상이 따뜻하다는 생각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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