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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Sep 08. 2019

아이에게 기꺼이 음식을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아이와 고기 전쟁이 시작됐다.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을 야금야금 씹어 먹는 아이가 처음에는 대견했다. 주변에는 아이가 고기를 먹지 않아서 발육이나 영양 섭취에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하는 엄마 아빠도 있지만 우리 집 아이는 이런 걱정은 없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분유나 우유만 먹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불쌍하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고작 분유나 우유를 먹고 만족해서 울음을 그친다. 조금 더  자라서는 밋밋하고 싱거운 야채고기가 잘게 섞인 이유식을 먹고 흡족해한다. 아이들이 어른이 보기에는 맛없는 음식에 울던 울음까지 멈추는 것을 보고 내가 아이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아이가 고기를 먹기 시작했을 때 이제 아이도 어른처럼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나이게 접어들었고 이제부터 아이와 음식에 대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현실에  신이 났다. 


 아이가 어렸을 때 처음에 입에 댄 고기는 흔하디 흔한 삼겹살이었는데 입이 짧아서 사각형 모양으로 잘게 가위로 자른 고기 조각을 5~6개 정도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이가 한 해 한 해 자라가면서 식욕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맵고 짠 음식을 입에 대기 시작하더니 먹는 고기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양도 부쩍 늘었다. 쌈장을 바른 삼겹살에서부터 짭조름하고 걸쭉한  국물이 일품인 감자탕, 묵은 김치와 함께 먹는 매콤 시큼 달콤한 등갈비,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제육볶음까지 다양한 종류의 육류 반찬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5살 때부터 고기를 처음 접하기 시작하더니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먹는 고기의 종류와 양이 급격히 변해 버린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나와 아내가 먹을 양의 고기만 준비해도 2 인분의 양으로 어른 두 명, 아이 한 명이 충분히 먹고도 배가 불렀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이제는 내가 먹을 고기의 양까지 아이가 슬금슬금 손을 대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의 도발에 자발적 포기를 선언했다.


 며칠 전에 김치 등갈비 찜을 했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15개 조각의 등갈비가 있었고 아이는 무려 12개 정도를 먹어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3개를 내가 먹고 나는 등갈비의 묵은지 김치와 남은 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나름 식욕이 강하고 맛있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나지만 고기를 열렬히 바라는 아이의 눈길에 식욕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들은 아빠보다 아이에 대한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내는 아이와 나에게 고기를 양보하느라 등갈비 1개밖에 먹지 못했다. 


  어쨌든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은 생각, 나는 덜 먹고 덜 입으면서 아이에게 더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결혼 전의 나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나쁘게 말하면 구질 구질해 보였었다. 아이가 먹다 남은 등갈비의 살코기를 발라 먹고 아이가 더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먹던 것도  곧바로 주는 부모의 모습은 결혼 전의 나에게는 구질 구질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구질 구질한 모습을 내가 즐겁고 신나게 흉내 내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기분이 전혀 나쁜 것이 아니며 구질 구질한 모습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가 즐겁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는 고파도 마음은 더없이 행복해지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험난한 세상에서 웃을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신이 우리에게 준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나이 드신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면 아버지는 항상 이런 말을 하신다. 

"너한테 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고 또 한 편으로 너한테 너무 고맙구나." 나는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시면 오히려 내가 아버지께 나를 길러주신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의 말이 이해가 간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나줘서 나로 인해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고 살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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