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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Oct 03. 2019

아침 초등학생 아이와 같이 학교에 갔습니다.

 며칠 전 월요일 연차를 신청했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한 이후로 업무가 바빠서 평일 날 연차를 사용할 여유가 없었는데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연차를 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평일 하루를 연차를 내어 쉬게 되면 연차 전 날 늦게까지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며 시간애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게으름을 부릴 수 있었다. 연차 당일 아침 늦게까지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뒹굴거리는 나와 바쁘게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연차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기 때문에 연차를 내도 아이의 등교 시간에 맞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줘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늑장을 즐길 수  없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맘먹고 연차를 낸 것은 나름의 소중한 이유가 있었다.


 아침에 아이와 함께 아이의 학교에 같이 가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 되었지만 아내와 아이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사람이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이후로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부모와 같이 등교를 하지 못했다. 평소 아내와 나는 이른 아침 출근 시간 때문에 매 번 아침마다 이웃에 사는 아이 친구의 부모에게 서둘러 아이를 맡기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바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이웃집에 데려다 줄 때는 이불을 덮어쓴 채로 잠에 빠져 있는 아이를 토닥여 깨운 후 아이를 이웃집 문 앞까지 데려다준다. 포옹을 하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아이와 헤어질 때쯤이면 아이의 등 전체를 다 덮을 정도로 큰 가방을 메고 눈을 비빈채로 이웃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아이는 어는 날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 아빠랑 손잡고 같이 학교에 가고 싶다."


 아내는 아이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아이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내로부터 이 말을 듣고 나서 아이에게 깊은 미안함이 들고 가까운 시일 내에 아이와 손잡고 같이 꼭 학교에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바로 그 날이 온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기 전날 즐거운 기대로 가득 찬 아이처럼 아이와 같이 학교 가기 전날부터 온 몸에 기쁨의 전율이 흐르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미 40대 중반이 되어가는 내가 정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내가 아직도 나쁜 어른이 아니라는 증거일까?)

 

 "아이와 같이 학교까지 걸어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아이와 학교를 갈 때 무슨 길로 가야 더 즐거울까?  아이의 친구들에게 무슨 인사를 해줄까? 그리고 아이의 친구들을 만나니까 좀 멋있게 그리고 젊게 하고 가야지. "


왠지 아이와 같이 학교에 가면 어린이 동화책 속에 나오는 장면들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잔뜩 기대를 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이의 가방에 준비물들을 챙겨 넣어 주고 평소보다 아이를 조금 늦게 깨우고 아침 8:20에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나와 400~500m를 걷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내가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기 위해 출동해 있는 경찰들과 건널목에서 깃발을 올리며 내리는 학부모 봉사자들,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학교로 가는 할아버지 봉자사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아침 일찍 나와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리 어른끼리 이해 문제로 다투고 싸워도 아이들 앞에서는 숨겨져던 선량함이 발휘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아이가 아니지만 모두가 내 아이처럼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엄마의 자전거 뒷 좌석에서 잠이 덜 깬 채로 엄마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학교 가는 아이,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 동전을 놓고 돌리는 뽑기 기계 앞에서 뽑기를 하는 어린아이들, 좁은 길을 아무도 못 지나가도록 점령한 채로 3~4명이 나란히 걸으면서 재잘재잘 수다를 하며 활보하는 여자아이들, 머리에 새집을 진채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 가는 아이들.


 세월은 변했지만 아이들의 학교 가는 모습은 내가 어릴때의 초등학교 등교때랑 똑같은 모습이었다.   


 퇴근 후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이렇게 많은 어린아이들을 길거리에서 보기 어려웠는데 아이와 학교에 가면서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아이들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월요일 아침 8:30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내가 사는 이 동네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니 참 놀라웠다. 지금까지 이 아이들은 어디서 숨어 지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아이와 처음으로 학교까지 같이 걸아가면서 아이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같은 반 친구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울었어 그래서 선생님이 사탕을 사다 주셨어."  "학교의 3학년 형이 콜라를 한 병 다 마셨는데 나도 빨리 커서 콜라 한 병을 다 마시고 싶어."  "나중에 돈을 많이 저금해서 스마트 폰이랑 드론을 사고 싶어."  "앞으로 키가 크기 위해서 저녁에 일찍 자고 브로커리를 잘 먹을 거야."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비타민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학교 가는 내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재잘거려 주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았고 서론 본론 결론도 없었지만 아이의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이 힐링이 되었다.


 학교에 도착해서 아이는 곧바로 교실로 들어갔고 나는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더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와 학교 가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아이의 등교 길을 같이 한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아이가 조금만 학년이 더 올라가면 엄마나 아빠와 같이 학교에 가는 것을 창피해할 시기가 오겠지만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아이와 함께 영원히 가슴에 남는 일상의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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