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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Sep 22. 2017

단편소설

「단편소설」

  

 은주는 3년 정도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잡일을 도맡아 했던 그녀가 가장 좋아한 일은, 책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책의 겉장에는 도서관에서 발행한 바코드를 붙이고 그 위에 투명한 보호필름을 덧붙였다. 책등에는 어느 서가에 꽂히는 지 알 수 있는 분류기호 라벨을 붙였다. 바코드와 마찬가지로 그 위에 투명한 보호필름을 붙이고 나면 주어진 작업이 끝이 났다. 은주는 한 권의 작업이 끝날 때마다, 책의 이름을 소리 없이 읽어보았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누군가 활자의 자음부터 낱말과 문장, 문맥사이를 매만지고 다듬었을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었다. 저자가 직조한 책의 생명을 이곳에서도 다 할 수 있도록, 이름을 읽는 것은 그녀만의 의식이었다. 적을 땐 한두 권에서 많을 땐 오십여 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책들이 그녀의 입에 담겼다.      


 때론 시를 짓거나 짧은 글을 쓰는 취미를 가졌던 그녀는 직설적이며 부드러운 표현을 좋아했다. 시를 짓는 일은 문장을 만지는 일보다 쉽고 재밌었다. 문장을 만지는 일은 보이지 않는 나무의 가지를 치는 일 같았다. 주제를 정하고 하나의 글을 써내려 가다보면, 새로운 곁가지들이 올라와 그녀를 괴롭혔다. 그래서 긴 글은 한 번도 완성해 본 적이 없었다. 반면, 시를 짓는 일은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장면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굳이 표현하지 않은 부드러운 함축 사이로 새로운 상상이 가능했다.      


“화창한 가을~ 공원으로 나들이 오세요!” “00시 대표 공원!”      

 

 요새 그녀가 가장 많이 적고 있는 문장이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취미라는 이유로 시작해 현재에는 00시의 공원을 시민에게 홍보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하루에도 세 네 번씩 SNS에 글을 올리는 것이 그녀의 주 업무였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공원에 관련한 보도자료를 작성해야 했는데, 지난달에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강조하며, 보도자료 서문에 시를 써 상사로부터 이런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은주씨는 다 좋은데, 가끔 보면 허무맹랑한 구석이 있어.”     


 은주는 허무함을 느꼈다. 요새의 홍보란 ‘스토리텔링’이 유행이라, 어디에서든 스토리를 텔링 하라고 하지만, 정작 은주의 문장엔 스토리가 없었다. 매일 수없이 많은 글을 쓰고 있지만, 세상에 내 것이랄 게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이 허기짐과 허탈함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 여러 번의 검색 끝에, 어느 교육센터의 <단편소설 창작하기> 수업이 눈에 들어왔다. 신청을 마감했다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어 대기 3번으로 이름을 올렸다. 운이 좋아, 개강 당일에 자리가 하나 생겼다는 답변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교육센터로 달려갔다.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음... 일시불이요.”     

 

 적지 않은 금액의 수강료가 부담스러웠지만, 날이 갈수록 쌓여가는 허무함을 진료비로 지출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글쓰기 수업이 처음이었던 은주는, 수업의 모든  내용이 신기하고 어려웠다. 씨실과 날실의 교차처럼 이야기를 직조해야한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려 신기했다. 두 번씩 읽는 것이 숙제였던 「구멍」이나, 「하이네켄 맥주의 빈 깡통을 밟은 코끼리에 대한 단문」 같은 소설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걸 어떻게 저렇게 이해하지?’라며 속으로 조아렸지만, “저는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력을 느꼈어요.” 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단편소설 창작하기> 라는 이름대로, 이론 수업이 끝나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소설을 발표하고 합평의 시간을 가졌다. 열 평 남짓한 방에 열 두 어명의 사람들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책상을 만들어 한 면에 세 명씩 앉아 서로 마주보았다. 걸음걸이 덕분에 제 수명보다 빨리 닳아진 것 같은 갈색구두에 오렌지색 양말을 신은 중년 남성과 웃음과 눈물이 많아 수업시간에도 곧잘 웃고 울어 수업의 분위기를 담당했던 젊은 여성 사이에 앉은 은주는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즐거웠다. 총 4주에 걸쳐 진행하는 합평으로, 은주의 순서는 3주차였다. 한 주 씩 은주의 순서가 다가올수록 부담은 커져갔고, 다른 수강생의 소설을 날카롭게 평한 만큼, 자신이 그런 문장과 이야기를 가져올 수 있을지 그녀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은주에게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은, 공원에 취직한 이후 가장 큰 사건이 될 일이었다. 그녀는 사사건건 주변의 모든 일들을 소설과 연결지어 관찰하기 시작했다. 주5일 출근해 하루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은 관찰에 적당한 장소였다. 항상 당차고 해맑은 옆자리 주임을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으로 등장시킬까, 00시의 자랑거리로 치켜세우는 공원을 배경으로 그려볼까, 어느 조직에나 있을법한 뒷거래를 사건으로 다듬어볼까 고민하는 사이, 티-잉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윤희주임님. 앞으로 인턴 분들 업무 지시는 저를 통해서 하세요.”

“하, 그러니까 지혜주임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뭐냐고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새로 온 인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았던 맞은편자리 주임이었다. 보다 못한 옆자리 주임이 한마디 쏘아 붙이자, 맞은편 주임이 거세게 들이받았다.      


“윤희주임님한테 뭘 원하는 게 아니라, 인턴 분들 업무 담당은 제가 하고 있으니 저한테 얘길 하시라고요. 직접 가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고.”

“제가 그 정도 얘기도 못해요? 그럼 앞으로 저는 일도 하지 말란 소리에요?”     


 은주가 들은 소리는 사건이 시작한다는 신호 같았다. 그녀는 이 사건이 조금 더 자극적으로 발전하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윤희주임이 어떤 행패를 부려도 참고 지내던 지혜주임의 통쾌한 복수극을 기대했다.       


‘그래요. 지혜주임님.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았어요. 참지 말아요! 갑시다!’      

“윤희주임님, 제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고요. 무례하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지혜주임은 역시나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은주는 아쉬웠다. 지혜주임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윤희주임은 부장에게 달려가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 사람에게 명령이나 들으며 일할 순 없습니다!” 라고 울분을 토하며 조기 퇴근 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지혜주임님.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하하, 하.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네요.”

“저는 주임님이 더 들이받을 줄 알았어요. 오늘 일 났네! 하고. 그런데, 정말 잘 참았어요.”

“아녜요. 사실 저는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참고 말고도 아닌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말에 굳이 더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은주는 이 사건으로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문장을 만들기 위해 낱말을 고르고, 활자의 획을 만지며 ㅏ로 쓸지 ㅓ로 적을지 고민하는 일은 더 이상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지혜주임의 이름을 지해로 바꿔 주인공으로 삼는다 한들,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자신이 없었다.      


“9월 프로그램 안내 : 초록숲 세밀화 그리기, 반딧불이 관찰하기…”     


 SNS에 들어갈 짧은 문장을 다듬으며, 이 글을 보고 누가 ‘좋아요’를 누를까, 소설을 쓰면 누가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까,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진 않을까, 은주의 고민과 걱정은 씨실과 날실이 되어 교차했다.     


“김은주 지음”     


 그녀는 홍보문구 끝에 한 번도 써본 적 없었던 자신의 이름을 적으며, 글의 제목을 소리 없이 읽고 있었다.                






2017.9. 이봄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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