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그리고 집에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아주 작은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1 (2018.5.4.)
이사를 했다. 그리고 집에 이름을 붙였다.
소행성 1호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짐을 싸기 시작해, 혼자서 삼일이 걸렸다. 월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이부자리를 개어 쌓인 짐들 사이에 끼워 넣고, 마지막 정리를 했다. 두고 가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둘러본다.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바쁜 날이다.
월요일은 유난히도 날이 푹푹 쪘다. 초여름 날씨로 조금만 움직여도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엘리베이터 없는 사층 집인 소행성 1호는 이날 유독 높아 보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두시쯤,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이 돌아가고- 네시쯤엔 또 다른 친구가 과일이며 이것저것을 사들고 와 한참을 떠들었다. 짐을 들고 나르고 보이는 데마다 집어넣고 쑤셔 넣고 치우고 닦으니 금방 날이 저문다.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야, 이제 좀 씻자고 했다. 수도꼭지를 온수 방향으로 돌리고 오분이 넘어도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랫집에 사는 집주인에 연락하자, 냉큼 달려오셔서는 보일러를 보신다. 에이에스는 내일 올 수 있다는 통화를 끝으로, 이사 오기 전에 미리 점검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셨다. 집을 알아보며 물 한 번 안 틀어본 우리의 불찰도 있다.
아직 가스레인지도 없고, 근처에 목욕탕도 없어-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 유리병에 담아 적정한 온도로 희석시켰다. 내가 머리를 감으면, 겸조는 위에서 물을 부어주었는데, 너무 웃겨 세면대를 붙잡고 한참을 웃었다. 나중에 우리, 꼭 이 이야기를 그려두자고.
겸조는 기어이 찬물로 샤워를 하겠다고 했다. 한 여름 해수욕장에서나 할 법한 냉수마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으리라. “어흐흐흐 시원~~ 하다!”라는 감탄사가 물소리보다 유독 크게 들렸던 건, 내 기분 탓이라고 적어두겠다.
화요일엔 바퀴가 나왔다. 화장실 불을 켜고 문을 열자 내 검지 손가락 만한 바퀴가 후둗두둗두 튀어나왔다. 내 발악 소리에 놀라 뛰쳐나온 겸조는 벌레잡기 선수였다. 그는 전부터 "벌레 또한 생명이기에 절대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벌레를 탁- 치고 죽이는 것은 쉽지만 생포하는 일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는 이 친구에게도 그런 공을 들이고 있었다. 두부나 과일을 먹고 남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녀석을 잡아두고는, "얘는 집 바퀴가 아니네, 밖에서 날아들어왔네. 이렇게 큰 애들은 집에서 못 살거든."라며 바퀴에 대한 잔 지식을 설명했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집에는 모두 바퀴가 있었어." 라며 지식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이, 사뭇 애잔해 보였다. 녀석을 밖으로 놓아주러 나가는 길에, 혼잣말로 방생통을 만드네 마네 중얼거리는 소리를 나는 기어이 못 들은 척했다.
수요일엔 비가 내렸다. 세상 미세먼지들은 모두 잠식시킬 만큼의 비가 내렸다. 푹 덮인 동네를 쳐다보며, 우리 집이 이 동네 어디쯤이구나를 다시 가늠했다. 하루 종일 치우고 닦고 쓸고 닦고를 반복하다 냉장고가 들어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냉장고는 원래 월요일에 들어오기로 했었으나, 배송업체에서 주소를 잘못 적은 덕에, 이름이 같은 다른 동네 기사님 차에 실렸고, 이틀 뒤에나 배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날, 냉장고는 폭우와 함께 왔다. 사다리차는 곡예를 하듯 기울었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 고른 냉장고는 생각보다 덩치가 컸고, 자기 자리를 잡기까지 두 어번 창문을 넘는 곡예를 부려야 했다. 예상보다 늦은 냉장고 덕분에, 엄마표 파김치와 열무김치는 쉬어 터졌고, 얼려두었던 다진 마늘은 폴폴 냄새가 올라왔다. 주변에 냉장고 한 칸을 부탁할 이웃이 없었고, 딱히 지혜로운 방법을 찾지 못한 탓은- 오롯이 속상함으로 돌아왔다. 엄마 집을 나오면 나올수록 엄마 음식에 갖는 애착은 엄마와의 관계와 상관없이 깊어갔다. 내가 아는 가장 평범한 맛, 내게 가장 익숙한 맛 그래서 내가 아는 제일 맛있는 맛에 대한 소중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짙게 느껴진다.
냉장고를 받고, 근처 재활용센터로 가스레인지를 보러 갔다. 겸조는 내게, 언제일지 모르는 과거에는 가스레인지는 오만원 아래로 샀었다며 중고로 사자고 했다. 재활용센터에서 가격을 알아보니, 안전핀 없는 이구짜리 구형 레인지가 팔 만원이었다. 삼구는 "에이 봐줬다~ 십만 원!" 내 주특기는 검색왕 정보력인데, 이만 원 더 주면 안전핀 달린 신형 레인지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음에 오겠다고 가게를 나서며,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검색해 안전핀 달린 이구짜리 가스레인지를 주문했다. 다음에 이사 가는 집에도 이 녀석을 꼭 들고 가리라.
목요일엔 개미가 나왔다. 겸조는 개미 있는 집엔 바퀴가 없다며 안도를 했다. 이게 안도할 일인가 싶지만, 그는 “전에 살았던 집에도 개미가 있었어.” 라며 우리는 늘 공존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제 사용했던 일회용 컵을 조용히 씻어 두었다. 가까운 날에 방생 통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감이 제발 틀리길 바란다.
그렇게 맞은 오늘, 금요일은 내게 중요한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지원사업이라면 일단 거절했었지만, 막상 닥쳐보니- 꼭 필요한 사업엔 적정한 타협이 필요한 법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며, 팀을 꾸려 지원했다.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오지만, 인터뷰까지 갔다는 것만으로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해 준 팀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집에 돌아오니 인터넷으로 주문한 철제 선반이 도착했다. 아무리 검색력을 발휘해도, 원하는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 사이의 물건은 없었다. 디지털 외톨이가 된 기분을 만끽하며, 적당히 튼튼한 철제 조립 선반을 골랐다. 아직 조립을 끝내지 않았지만, 이 녀석은 우리 방 안의 주상절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흙살림에서 주문한 유기농 텃밭세트가 도착했다. 그로우백에 흙을 쏟아붓고 가지와 토마토를 심었다. 상추 화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심지 못했다. 푸릇하고 풍성한 식재료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녁에 뭐 먹지' 고민하다, 마늘과 올리브유 듬뿍인 알리오 올리오를 하기로 한다. 소금물에 면을 삶고 마트에서 사 온 깐 마늘을 종종 썬다. 다음엔 마늘 철에 마늘을 담뿍 사다놔야지 마음만 먹는 사이,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 서프라이즈로 엄마 집에 가는 길이란다. 그러고 보니 엊그저껜가, 문자로- "너는 어버이날 뭐할 거냐"기에 "글쎄.."라는 말만 남겼었다. 실제로는 홍삼액을 주문해 엄마에게 보내드렸다. 그래서 언니가 올라왔구나, 내일은 서둘러 엄마에게 가야겠다, 이야기하는 사이- 불에 올려놓은 면이 불어버렸다. 앗차!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한 가지, 나를 위해 요리하고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먹으며- 내일을 생각한다.
소행성에서의 하루는 매번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