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눈다는 것, 고친다는 것.
우리는 아주 작은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2 (2018.5.11.)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이름을 붙였다.
소행성 1호는 그런 곳이다.
주말엔 엄마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버이날 깜짝 선물이라며, 차로 네 시간 거리에 사는 언니네 식구들이 우르르 엄마 집으로 온 것. 반짝 지나간 주말, 일요일 오전에 언니네 식구들이 다시 돌아가자, 엄마는 내게 언제 갈 거냐 물어보며, 눈치를 살핀다. 나도 금방 갈 거라고, 대답은 했지만- 엄마 눈주름 사이에 핀 서운함을 먼저 알아채 버렸다.
"이사는 잘 했냐?"
"응. 용달 불러서 했지."
"꼭대기 층이면 덥겠다? 춥기도 추울 거고."
"음. 살아봐야 알 것 같아."
파김치, 오이소박이, 시금치나물, 오이 샐러드, 멸치볶음, 연근 조림, 들기름에 구운 김에 대파 여러 개를 송송 썰어둔 것들까지. 한 뭉치를 싸주셨다. 내가 들고 갈 가방에 한참을 꾸역꾸역 넣어보시더니,
"이거 제법 무거운데?" 라며 체중계에 달아보신다. 칠 키로 란다.
"너 들고 갈 수 있겠냐?"
엄마 집을 나온 이후부터, 엄마 음식에 갖는 미련이나 욕심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당연하지."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텅 비었던 냉장고에 반찬을 넣었다. 용량별로 밀폐 용기에 담아 차곡차곡 넣어, 한참을 쳐다보며- 부자가 된 기분을 오롯이 만끽했다. 저녁밥은 엄마 반찬으로 한 상 가득 차렸다. 아직 식탁이 없던 터라, 바닥에 늘여놓고 밥을 먹었지만- 엄마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고, 공기에 닿은 쌀밥의 온도 또한 여전히 따뜻했다.
-
월요일엔 아침 일찍 서둘러, 텃밭에 다녀왔다. 일찍이 심어둔 토마토와 가지들이 시들어, 새로이 모종을 사들고선 텃밭 친구들을 만났다. 상추와 열무를 솎아주고, 텃밭 선생님께서 나눠주셨다는 비료를 뿌리고 덮어주는 일, 텃밭을 시작한 이래 가장 열심한 하루였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한껏 낮잠을 자고 일어나, 지난주에 책장으로 주문했던 철제 선반을 조립했다. 너비 1200에 높이 1800에 대해 감이 없었던 나는, 조립이 끝난 뒤에야 이게 엄청 큰 거였구나, 무릎을 친다.
화요일엔 드디어 세탁기가 도착했다. 모아둔 빨래를 하고, 탈탈 털어 널어두니 기분이 말끔해진다. 묵혀두었던 슬픔이나 아픔, 응어리진 감정들도 이렇게 빨아서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색도 잠시, 집안 곳곳을 청소했다. 집안일을 마치고, 엄마가 해주신 반찬들과 텃밭 채소들로 저녁을 차려 먹었다. 그런 먹을거리들을 자랑하려고, '우리 이렇게 저녁 먹는다~'며, 사진을 찍어 텃밭 친구들 대화창에 올렸다. 멤버 중 한 명이 화들짝 놀라며, 집에 안 쓰는 좌식 테이블이 하나 있어, 주겠다고 한다. 드디어 식탁이 생긴 것! 감사한 마음으로 잽싸게 받아와, 여러모로 좋은 쓰임을 다하고 있다. 고마운 사람!
수요일엔 우리 집의 간판을 만들었다. 여기는 그런 곳이라고 괜히 써보고 싶었다. 그러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요리인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전에 살던 동네의 단골 빵집이 생각났다. 내가 식빵을 사갈 적이면, 으레 "오늘도 샌드위치 만들어요?" 물어보셨던 곳. "먹는 걸 나누는 건 가장 큰 복이에요~ 엄청 대단한 일이라고요~." 하하 호호하시던 사장님이 생각났다.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인사드릴걸, 바쁘다는 핑계로 왜 미루기만 했을까.
그런 아쉬움 속에 달걀 12개를 삶아 으깨고 다져, 식빵에 곱게 발랐다. 식빵 하나를 여러 개로 잘라 그릇에 담아 겸조와 나란히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하나는 아래층에, 또 하나는 1층 가게에, 다른 하나는 1층 옆 가게에.
얼마 전까지, '떡을 돌려야 하나' 고리타분한 고민만 하다, 시기를 놓쳤다. 이사 당일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그 이후에는 꼭 다른 핑계들이 나타났다. 인사를 한 번 해야 할 텐데- 날이 갈수록 아쉬움만 늘어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걱정만큼 겁이 많은 나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서로를 안다는 것이 중요했다. 새로 온 동네, 익숙하지 않은 만큼 아직 조바심이 큰 나로서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생겨간다는 것에 작은 안도를 한다.
목요일엔 도서관으로 향했다. 모처럼 <독립생활자들> 작업을 하며, 일주일 사이 내게 있었던 일들을 한껏 늘어놓았다.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이 모임은 요새 내게 즐거운 자극이 된다.
친구가 내게 줄 것이 있다 하여, 함께 우리 집으로 향했다. 엄청 편한 좌식의자 하나와 유리컵 두 개 등등 내게 없었던 살림살이들을 챙겨주었다. 아직 어질어질 어질러진 우리 집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발에 치이는 모든 것들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잘 정리해주는 것도 모자라, 예쁘장한 테이블 매트를 깔아주기도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때마침 도착해버린 책상들을 어서 빨리 조립해보자고 했다. 이것저것 가져다준 것도 고마운데, 조립까지?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먼저 나서서 박스를 뜯는다. 고마운 사람! 덕분에 우리 집에 드디어 작업실이 생겼다.
금요일인 오늘은, 자욱한 미세먼지처럼 온종일 피곤이 껴있었다. 샌드위치에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일주일 내내 미뤄왔던 스위치를 바꾸었다. 원래 붙어 있었던 스위치들은 낡고 색이 바래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엔, 동네 마트에서 삼천 원짜리 스위치를 사서 끼었는데, 전선이 내부에서 합선이 된 모양. 3구짜리 스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이 동시에 켜지고 꺼졌다.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보니 그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종류의 스위치들을 팔고 있었다. 겸조가 좋아하는 느낌의 빈티지한 스위치들도 팔았는데, 정말 오래된 옛날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딸깍' 느낌의 스위치였다. 하나에 만 원짜리인 그것은,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역시나 과감하게 포기했다.
일상생활이든 직장생활이든 언제나- 적당한 것은 늘 어려웠다. 주어지거나 놓인 생활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과의 적당한 조화를 찾는 법은 한참을 헤맬 일이었다. 고작 스위치 하나도 말이다. 다행한 것은 우리 집이 꽃무늬 벽지가 아니라는 점, 불행한 것은 부엌장이 체리색이라는 점이다. 적당한 범위와 적정한 선택 사이에서 내게 늘어나는 것은 검색하는 기술과 리뷰를 읽어보는 속도 정도라고 해두겠다.
스위치를 바꾸고, 부엌에 덩그러니 달려있던 펜던트 조명을 교체했다. 부엌에 있던 그 조악한 녀석은, 보는 나로 하여금 늘상 자글자글한 분노를 일게 했다. 약 2주간의 검색을 마치고, 결국에는 가장 단순한 조명을 골라 달았다. 물론 의자를 짚고 올라가 드라이버를 들고 나사를 조인 것은 겸조의 몫이었지만, 조명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누리는 작은 기쁨은 함께의 몫이었다.
요새 붓글씨로 작업하는 겸조에게, 우리도 '입춘대길'같은 것을 적어보자고 했다. 사실 절기상 입춘은 한-참이나 지났으니 각자 적고 싶은 걸 적어보자고 했다.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이 공간에 바라는 것들 말이다.
-
아직 이 집에 고쳐야 할 것이 많다. 고친다는 것은 제대로 기능하도록 바로잡거나, 낫게 하는 것일 텐데 내게 고침이란- 내 취향대로 공간을 바로잡고, 낫게 하겠다는 말일 테다. 생활의 여러 장면들을 포착하고 소소하게 누렸던 이 기쁨들을 잊지 않으려 여러 번 기록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소행성에서의 하루는 매번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