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행성 1호

조심을 배우는 하루

작은 기회를 소홀히 하지 말 것, 작은 일들을 업신여기지 말 것.

by 이봄

우리는 아주 작은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4(2018.5.28.)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이름을 붙였다.
소행성 1호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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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는 엄마 집에서, 서울 집으로 가는 짐을 싸고 있었다. 이제는 한사코 거절하는 일도 어려워,
"이거 필요해? 저거 필요해?"라는 질문에
"응, 주면 고맙지."라고 답한다.


엄마에게 거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커다란 중력이 느껴진다.

엄마는 또, 고춧가루 한 다발과 버섯이나 호박 같은 것들을 볶은 채소 무리를 밀폐 용기에 담아 주셨다.

항상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어 주시던 것을 이번에는 새로운 그릇에 담아 주신 것.

생각해보니- 현관 앞에, 재활용하려고 내놓은 상자 하나가 떠오른다. 냉장고 정리용 그릇 사진이라, 엄마가 새로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고 말았는데, 주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입술을 앙, 다문다.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해, 생활을 긍정하고 그럭저럭 사는 척의 멋을 낸다.

엄마에게 차마, "잘 살아 보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의 잘은, 한참을 멀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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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엔 오전부터 한사코 바쁜 척을 했다.
텃밭 식구들이 챙겨준 시금치와 상추를 손질하고 점심 손님을 맞이할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 마음 붙일 공간이 생겼다는 안정감은 여러모로 즐거운 기운을 뿜어낸다.

쌀뜨물을 받아 된장을 풀고, 다진 마늘 크게 한 스푼에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다. 시금치를 넣고 폴폴 끓어오르면 불을 끈다. 삼십 분 전에 안친 밥이 퍼지길, 뜸을 들인다. (아직은) 이 모든 일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화요일엔 아침부터 서둘러 채비를 해, 약속 장소에 나갔다. 무언가 쓰는 모임은 이로써 일곱 번째인데, 모쪼록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이 자리에는 꼭 태블릿을 들고 가, 그림 작업을 하는데- 며칠 동안 하지 않던 그림 작업을 하면, 손과 머리가 재부팅되는 기분을 느낀다. 매번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는 건, 작업자로서 자랑 아닌 부끄러워할 일이다.


뭐랄까의 동기부여를 위해, 지금 하는 작업을 페이스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새로 연재해보겠다며 계정을 열었지만- 온라인에 그림 올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지속할지 미지수다. 사실 내게 필요한 것은, 단기간의 동기부여보다- 누군가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일이다. 욕먹을까 무섭고, 글자 하나, 선 하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두렵고, 나를 설명하는 일에 대해,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설득해야 한다는 강박에 힘이 든다. 에라 모르겠다.


수요일엔 온라인 쇼핑에 하루를 보냈다. 취미가 검색이고 특기가 둘러보기인 내게 무언가 사야 한다는 목표가 생긴 것은- 사실 굉장히 피로할 일이다. 최저가를 검색하고, 그 물건의 준거집단을 찾아내 비교하고 작은 실오라기 하나 오점 없는 구매를 위해 수십 개의 상품평을 읽어낸 후에야 안심하며 결제를 누른다. 모르는 것을 구매할 때의 신중함 뒤엔, 지인이 추천해주는 것이라면 의심 없이 단번에 구매하는 반면이 있다.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 덕분에 시원한 재질의 냉장고 바지를 구매하려고 여러 쇼핑몰 사이트를 검색했다. 실은 텃밭에 갈 때 입겠다는 명목이었는데- '신축성, 시원함'이라는 판매자 제공 정보 뒤엔 '얇아요. 속옷이 다 보여요'라는 솔직한 상품평이 나를 혹사시켰다. 그렇지 않은 물건을 찾으려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보낸 끝의 결론은 이건 시장 가서 사야 하는 것이라며 화면을 꺼버렸다.


반면, 요새는 고무줄 바지가 제일이라며 친구가 보내준 링크가 떠올라, 상세정보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대충 훑어본 뒤 바로 결제를 했다. 아마 괜찮을 거라며 말이다.


목요일엔 팩 우유를 뜯어 그릇에 털털 부어, 간편식이라는 과자 더미를 한 움큼 털어 먹었다. 밥주걱조차 들기 귀찮은 아침엔, 그런 것들로 끼니를 대신한다. 와그작와그작 씹히는 소리의 바삭함을 좋아한다. 우유에 잠겨 불어버리기 전에, 얼른 먹고 싶다. 금요일에 있을 북 콘서트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문제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 조금 일찍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와, 스스로를 한심해 한들 소용이 없다.

단어를 나열한다고 해서 문장이 완성되진 않는다. 주어를 빼고 목적어들만 나열한 다음 을를이가를 붙이지도 못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반나절이 지나가고- 이것저것 택배가 도착했다.


저렴한 것들엔 구매에 들인 정성보다 더한 노동이 필요했다. 내가 구매한 조립식 책상이나 서랍은 온통 그런 것들이었다. "한 시간이면 거뜬하겠지, 내겐 빌려온 전동 드릴이 있으니!" 라며 뜬금없는 부심 속에 남은 반나절이 지나갔다. 내게 남은 건, 조립을 다 끝냈다는 성취감보단,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마음과 지나 가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이었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겸조와 산책을 나갔다. 초여름날의 선선한 밤공기는 내게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미련의 끝을 잡는 미련을 떨 필요가 없다. 그조차도 솔직해보자는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 오늘이 지나가버린 건, 아무래도 집이 너무 더운 탓일 거다.


0.jpg ⓒ 정장희


조금 더 솔직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금요일은 그렇게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 자리에 앉아, 준비한 내용을 꼼꼼히 읽어봤다. PPT를 준비하고, 그림에 맞춰 작성한 내용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었다. <괜찮은 날>이 나오기까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세 번, 네 번 연습을 하는 사이,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에 친구를 만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던 것. 겸사겸사 망원시장에 들러, 냉장고 바지를 구경하다- 세 장이나 사버렸다. 한 장에 오천 원이 저렴하다고 느껴진 탓일 거다. 겸조와 커플로 입겠다며 굳굳이 꽃무늬 바지를 두 장이나 샀다. 그동안 내가 고른 저렴한 것들 중에 이 바지가 제일 마음에 든다. 터무니없이 마음에 든다. 덕분에 신나게 점심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시간을 잘 보냈다. 북 토크가 진행되는 7시에 맞춰, 특별히 서두를 것도, 늦을 것도 없이 잘 도착했다.


적당한 긴장과 불편함이 감돌았다. 준비했던 것들이 모두 하얘질 정도의 불안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그 사이에 아는 낯을 발견하면 괜스레 더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부디, 제발의 이름으로 겸조에게 오지 말 것을 부탁했으나 쑥스러운 얼굴로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을 들고선 당연한 듯, 등장했다.


"사실은 말이야. 이런 꽃을 사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며 건네는 꽃 위엔 번뜩이는 금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일전에, 내게 장미꽃 한 송이를 "짜잔!" 하며 준 적이 있는데, 그 가게에서 샀다는 것이다. 그때, 장미 한 송이만 사겠다고 하니 "그냥 줄게요~ 다음에 한 번 사세요."라고 하셨던 것.


약속을 지키려, 그곳에서 한 다발을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포장지를 꺼내는 순간부터 '어쩌지..'의 마음이 들었단다. 포장이 끝나, 냉큼 가져오려고 손을 내민 순간, 사장님은 금가루 스프레이를 푸-우하고 분사하셨다고. 겸조는 번쩍이는 꽃이 쑥스러워 오는 내내 손으로 가렸다고만 한다.


예정된 대로 북 토크를 시작했고, 준비했던 말들과 갑자기 떠오른 말들 사이를 적당하게 헤맨 끝에- 요청한 30분을 잘 채울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닿을지 모르는 말들을 조금 더 조심하고 예민하게 다루었어야 했는데. 그런 아쉬움 속에 조심을 배우는 하루다. 북 토크 이후의 질문시간엔 히든북의 혜원이 진행을 맡았다. 질문과 감상을 오가는 사이- 혜원이 한 이야기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일전에 내가 코워킹을 운영하던 때, 남기고 간 글 하나를 며칠 전에 우연히 보게 되었다면서-

"얼마 전에 코워킹에서, '누군가는 계속 상상해야 한다' 고 똘봄이 적어 놓은 글을 보고, 감동했었어요."

그 문장을 발견하고, 기억해준 혜원에게 참 고마웠다. 동시에- 2년 전, 그 글을 적을 당시가 기억났다.


오지 않을 미래는,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나아지길 바란다면, 그 순간을, 장면을 계속 상상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코워킹 스페이스 오픈을 앞둔 당시 내게 절실했던 말이었다. 내가 상상하는 만큼 펼쳐지고 움직이게 될 공간, 세상에 새로운 것 하나 없다고 믿는 내게, 새로운 것에 대한 요구와 강박 사이에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사실, 면접 같은 것을 볼 때, 5년 뒤- 10년 뒤- 당신의 모습을 이야기해보라는 질문을 굉장히 싫어한다.

"저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사는 걸요."라는 답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만, 내가 불행해질까 늘상 노심초사하는 겁쟁이라, 그럴싸하게 답변을 지어내는 일이 좀 더 쉬운 선택이었다. 그런 내가, 상상해야 한다는 말을 쓴 것이 조금은 우스운 일이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앞으로를 꾸준히 상상하거나 다짐해보기도 한다.


작은 기회를 소홀히 하지 말 것, 작은 일들을 업신여기지 말 것.
오늘 적은 상상과 다짐은 이런 말들이다.
앞으로 내게 펼쳐질 작은 일들을 생각하는 일상을 보낸다.


소행성에서의 하루는 매번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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