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작은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5 (2018.6.1.)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이름을 붙였다.
소행성 1호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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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는 말이 가진 파급력과 영향력만큼 무게를 달아 잴 수 있다면 아니, 그 무게만큼 무언가 짊어지게 한다면 새삼 조용한 세상이 되려나. 좋은 말이 퍼지는 속도보다, 나쁜 말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른 이유를 고민하며. 세상은 갈수록 다양해져야 하지만 불현듯 겪는 나쁜 말들에 대해, 말문 막힌 사회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동시에, 나를 소진하는 것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진 말자고 다짐을 한다. 열심히 살라는 말에 익숙해지자, 이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이 함께 했다. 설령 내가 시작한 일이라 한들-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다섯 번의 퇴사로 충분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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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개월짜리 고가의 수업을 결제했다. 월요일엔 첫 수업이 있었다. 주 이 회, 저녁 수업이다. 밤 열 시 넘어야 끝나는 수업에, 내 체력이 괜찮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수업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 멍띤 시간을 보냈다. 숨만 쉬며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빚-싼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하길- 나는 행열을 땋땋 각 맞춰 편집할 때 희열을 느껴, 허나 나는 기초가 약해. 그걸 기초부터 심화과정까지 탄탄하게 배우고 싶은 거시야!라고. 그렇게 신청한 인디자인 수업은 생각했던 만큼이었으며, 앞으로 나로 인해 나열되고 편집될 타이포들을 떠올리며, 내가 만들어낼 무언가들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냈다.
화요일엔 오래전부터, 가려고 마음먹었던 운동센터에 상담을 다녀왔다. 일회 참관 후, 결정해도 좋다는 이야기에 당장 목요일 수업을 참여하기로 했다. 월요일 저녁에 수업을 듣고 오니, 도무지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이제 더는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오전부터 일찍이 상담을 다녀왔다. 생활이라는 말로 담을 수 있는 행위의 일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의 크기만큼 체력을 기르자, 마음을 먹는다. 마음만 말고, 정말로.
수요일엔 거래인감도장을 만들었다. 얼마 전에 사업자등록을 마친 사업체명을 적어 넣고 대표지인이라는 한자를 새겼다. 2월 말쯤, 친구들과 팀을 꾸려 어느 지원사업에 서류를 냈고, 인터뷰에 참여했으며- 결국 최종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사업자를 내고, 도장까지 파게 된 것.
평-생 어딘가의 직원으로만 살 줄 알았던 내가, 사업자를 내고 작업을 하는 이 과정들이 아직도 낯설다. 잘할 수 있을까? 자꾸만 확인한다. 아직 해 본 것이 없는데, 잘 못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옳다, 맞다, 그렇게 가면 된다는 확신을 찾아 겉돈다. 사실, 내 앞날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어 그냥 헤맬 뿐이다. 어쩌면 나는 좀처럼 헤매고, 해내는 중일 거라는 확신만이 남는다.
목요일엔 드디어 운동 수업에 참여했다. 이 시간이 익숙한 사람들 속에 누가 봐도 처음 온 사람 티를 팍팍 내며, 눈치를 살핀다. 사람들이 매트나 도구 여러 개를 쥐어준다. 내 자세가 기우뚱하면, 옆에 계신 분이 먼저 알아채고는 "고개를 좀 더 꺾어요. 갈비뼈에 콱하고-" 등의 첨언을 해준다. 고작 10분 걷고, 20분의 스트레칭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프다고 신음했으나, 본격 운동은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으- 아- 하- 아이고- 의 효과음 끝에 1시간이 지나갔고, 괜스레 시원함을 느꼈다.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이 괴성을 지르고 있음이 분명했으나, 고작 한 시간, 한 번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건 아마, 내가 나에게 이 정도 기여했다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운동을 했으니 그만큼 잘 먹어야 한다.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두부집 콩 국물을 사두었다. 생협에서 국수 면을 샀다. 한 달 동안 고민만 하던 뚝배기 그릇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 남았단다. 그럼 사야죠. 8500원에 계란찜 전용 뚝배기를 샀다. 저녁밥은 콩국수에 열무김치를 얹어 먹는다. 다른 건 몰라도 잘 먹고 있다는 데엔 확신을 아끼지 않는다.
금요일인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라면 한 시간만 더.. 게으름을 부렸을 텐데, 이 모든 것은 어제 한 시간의 운동 덕분이라며 격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것도 잠시- 어제 갑자기 쓰인 근육들이 아프다고 내색을 한다. 으아. 온몸이 쑤신다.
올해 계획한 일들을 돌아본다. 하겠다고 적은 일들과 신청해야 하는 사업비의 숫자 사이를 오가며, 무얼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문뜩, 생활비 통장에 잔액이 없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한 달에 사십. 한 사람에 이십 씩, 데이트 통장에 돈을 넣어 함께 지출했다. 이번 달에는 12일에 돈을 넣었는데, 생활용품, 잡화, 먹을 것 등등 함께 사는 것에 드는 무언가 들을 사는데 한 달도 안 되어 홀랑 다 써버렸다. 우리가 한 달을 사는 데 드는 숫자는 얼마일까, 각자의 부담은 얼마여야 할까, 생활이 안정되는 데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겸조와 나란히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식탁 위에 오른 것의 대부분은 각자의 어머니가 보내온 음식들이다. 나는 아직도 음식에게 제맛을 찾아주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 짜거나 달거나 태우는 날이 더 많다. 내가 기억하는 맛있는 맛을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 집을 나오고, 독립했다 말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수고로움 속에 살고 있다.
소행성에서 오주가 흘렀다. 그래, 같이 살아보니 어떻냐는 질문에는, 적당히 솔직할 수밖에 없다. 이사 온 첫날, 둘째 날, 아마 셋째 날 까지는 서로와 티격태격의 시간이었다. 왜 나만 빨래를 하고 나만 청소를 하는 것 같지?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왜 네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뭐 이런 사소함에서 시작해, 서로가 잘 하는 것 혹은 서로를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는 것들로, 양보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때때로 겸조는 이상한 삼각관계를 논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겸조는 봄에게 못 이긴다. 봄은 바퀴에게 못 이긴다. 바퀴는 겸조에게 못 이긴다. 그럼 누가 이긴 거야?
덕분에 겸조는 한동안- 회전을 목적으로 하는 둥근 물체를 같은 단어로 일컫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방문을 열 때마다 그 생물이 쪼르르 기어 나올까 봐 겁에 질려있으며, 겸조는 기꺼이 방생 통을 만들어 상시 대기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이런 기꺼이 하는 수고들의 연속이다.
살아 보니 어떻냐는 질문에 대해선 사실, 다양한 답을 할 수 있다. 준비된 말들도 있고, 듣기 좋은 말들만 골라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말들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결국, 쓰기 어려운 말들은 또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소외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오늘의 기록 또한 훗날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살면 살수록, 쓰면 쓸수록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아 간다. 나는 한참을 부족한 사람이라,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만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고, 책임지는 일이자, 짊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퍼져나가는 단어와 문장, 말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일상을 보낸다.
소행성에서의 하루는 매번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