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사이 먼지가 소복한 키보드
각질, 머리카락, 비듬, 코딱지, 귀지, 과일주스와 커피국물 그리고 음식물 부스러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나는 키보드이다.
누가 제발 내속 좀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다.
내 안에는 저 오물들이 한 가득이라서
근질근질, 끈적끈적, 스물스물
괴로워 미칠 지경인데
오물은 썩어가며 바이러스가 되어 퍼져나가고
나는 그런 바이러스의 배양 산실인데
다들 나를 키보드라고 부른다.
내 이마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왼쪽부터 ㅂ,ㅈ,ㄷ,ㄱ,ㅅ…… 이렇게 말이다.
보통 가로 세로 각각 1센티미터의
좁디 좁은 이마를 가지고 있는데
특이하게 Enter 라는 문신을 한 아이는 정말 넓은 이마를 가졌고 Space bar라는 문신을 한 아이는 정말 긴 이마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마가 좁다고 덜 맞는것도 아니고
넓다고 더 맞는것도 아니다.
몽당한 손가락은 왔다 갔다 하면서
내 이마를 사정없이 때려대는데
어쩔때는 한번에 두세 이마를
동시에 때리는게 참 때리는 기술도
가지가지다 하며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내 이마를 때려대는 이 자식은
보통 나를 쳐다보지 않고 때리고 있어서
나는 이 자식의 얼굴 보다는 주로 턱을 보고 있다.
살이 찐 이 자식은 턱이 두개이고 그 주변으로 거뭇거뭇 수염이 수북한 자식이다.
정면으로 봐도 비호감이지만
밑에서 턱을 바라보는 모습은 극혐이다.
이런 비호감 극혐 자식은 자리에 앉아서
그렇게 먹고 마셔대는데 한번도 깔끔하게
먹거나 마시지 못하고 매번 질질질 흘려댄다.
뜨거운 카페라떼를 흘리기라도 하면
몸 사이사이로 우유국물이 퍼지고
그 국물이 마르고 나면 우유 썩는 냄새가 진동해 몸서리를 치게 한다.
과일쥬스를 마시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온 몸은 들큰한 액상과당에 휘감겨 끈적끈적 헤어날수
없게된다.
점심 때면 바쁘기라도 한건지 자리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어대는데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말도 못한다.
빵 부스러기면 양반이고 샌드위치 사이에 있는 양상추, 토마토, 햄, 계란이 쩝쩝거리며
씹다가 입안에서 튀어나오면 그 조각조각들이 고스란히 내 몸안으로 들어와 썩게 된다.
샌드위치 소스라도 ‘뚝’ 떨어지면
물티슈를 가져다가 ‘드르륵 드르륵’ 하며
내 이마를 닦아대는데 말이 닦아대는거지
온 이마에 소스를 펴바르는 꼴이다.
그런 이 자식이 하는 역겨운 짓 넘버원은
일이 잘 안풀릴 때 모니터를 빤히 보면서
제 몸에 붙어 있는 것들을 하나 둘 털어내기 시작하는 정말 더러운 버릇이다.
머리카락을 만지막 만지작 거리다가
두피를 뜯기 시작하는데
우들두들한 두피를 뜯은 손톱을 오므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빼집어 꺼내고 나서는
새끼 손톱크기만한 하얀 두피딱지를 들고는 신기한지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툭 하고 떨어뜨리면
그게 고스란히 내 몸으로 들어와 저 구석에 자리잡고 만다.
우웩
그런 식으로 코도 후비고 귀도 후비면서 코딱지와 귀지를 귀지를 아무렇게나 ‘틱’하고 튕겨보지만
대개 날아가지 않고 다 내 몸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내 몸은 온갖 오물이 끈적끈적하게 꽁꽁 뭉쳐진 다음 딱 붙어있어 거꾸로 들고
아무리 탈탈 털어봐도 마른 비듬만 몇조각만 떨어질 뿐 속에서 정말 제대로 썩고 있는
오물덩어리는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키보드 털기
내 몸에 들어찬게 오물인줄 아는데 그 오물을 뱉아내지 못하는 나도 오물이 되어가고
뱉아내지 못한 오물로 가득한 몸은 그렇게 썩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