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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난 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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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Nov 24. 2021

소방관은 식스폐를 가지고 있다.

주방용품도 제대로 남은게 없었다.


"사장님! 화재보험은 가입하셨죠?"


현장 감식을 마친 감식관은 능숙하게 마스크를 벗으며  긴 에쎄 담배  붙이 물었다.

'아! 화재보험 안 들었는데'

탄식과 함께 부정 답으로 다시 바라본 그는

하얀 담배 연기를 뭉게뭉게 내뿜고 있었다.

일년 넘게 끊은 담배지만 서너시간 피말리며 마음 졸인탓에 지금 저 담배 너무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감식관은 딱하다며 보험료 한 달에 2만 원도 안다며 소주 한 잔 값도 안되니 가입하라고 하며 연신 연기를 내뿜는다.

없는 화재보험 얘기를 자꾸 내 속 쓰리게 하는

이 양반은 방금 전까지 저 안에서 그리 유독가스를 셔대고는 또 담배를 피우는게 대단하다 싶었다.


먹방 유투버가 밥 배, 빵 배가 따로 있다고 하듯이

소방관은 연기 폐, 담배 폐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감식관은 그렇게 맛있게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는 떠났다. 음료수도 안 마신대서 고생하셨다며 감사 인사를 해대다가 어둑어둑해지는 겨울 오후 집사람 과 다 타버린 집 건질게 있는지 다시 들어갔다.

 

휴대폰 손전등으로 이 방 저 방 비춰보면서 탄식과 안도가 교차했다.  


옷장 안에도 꼼꼼히 소화수를 뿌려대서 죄다 젖었는데 결혼식 후 한 두번 밖에 입지 않은 한복도 집사람이 시집오면서 받은 핸드백도 젖고 그을음이 득해 값 나갔던 그때 생각에 아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애들 돌잔치 때 받은 금붙이는 변함이 없어 얼른 감싸 안았고 아이들 사진 모아둔 앨범도 그대로라서 다행이고 다행이다를 연발했었다.

 

일찍 밤이 찾아왔고 주거 기능을 상실한 이 곳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그을음 덩어리 귀중품을 챙겨 옆 단지 처가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하교 후 외할머니 집에서 사고소식을 듣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불이 났는지 궁금해하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허기가 밀려와  이따 가보자고 하고 밥은 중국집에서 시켜 먹자고 했다.


뭐 먹겠냐는 질문에 얼었던 몸 녹이고 매캐한 도 달래줄 뜨끈한 짬뽕을 골랐다.

'당장 오늘은 어디서 자야하나?'



5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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