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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던 첫 명절

by 미뚜리

아빠는 혼자 사시게 되면서 급격하게 약해지셨다.

작년은 유난히 입원과 퇴원을

밥 먹듯 하신 그런 한 해였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결국, 진료 받으러 갔을 때 의사가

요양사 선생님이 아닌

보호자를 찾는다는 건

그만큼 버거워지셨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계실 땐

책임감 때문에라도 강해야 했었는데

그런 엄마가 요양원 가시게 된 지도 꽤 되다 보니

고독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을 거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보고 싶다는

여러 마음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을 거다.


계속 외로워하시고

낙상사고, 불규칙적인 식사,

반복되는 입원으로 이어지다보니

그런 아빠를 오빠들이 요양 병원에 모시기로 했나 보다.

아빠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런 아빠는 이른 아침 전화를 하셨다.


"감기는 좀 나았니?"

"아직, 그래서 가고 싶어도 못 가보네."

"이제 다 버려져 어쩌지,

엄마가 요양원 가는 바람에 그렇고

이젠 나도 곧 요양원 갈 거래.

둘째 오빠가 그랬어."


순간, 멍해진다.

예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아니 누구나 지나칠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알지만,

그냥 답답해지는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내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구나 싶은 마음에 그냥 눈물만 하염없이 나온다.

아니, 아빠를 도와드릴 수 없는 모든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그다음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아빠 꿈만 꾼다.

최근, 내가 과하게 아파서 엄마 생각도 나고

그냥 서러워 울고 있을 때

꿈속에서도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와

엄마는 거실에 앉혀놓고

아빠는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

어지럽혀진 방을 보셨고

그리고 청소를 왜 안 하냐는 야단을 치셨다.


그땐 내가 너무 아파서,

아빠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이런 꿈을 꾼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 아빠는 나와 주은이에게 전화를 하신다.


오전에 내게 전화를 하실 땐


"아빠야. 나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었어.

너 오지 마 너 독감이래 너 오면 나 죽어. "


하시더니 저녁에 주은이에게 전화하실 땐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 꿈은

아빠가 예전 동네 아저씨들 불러

잔소리하고 잔치를 하시는 싶었다.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 왜 잔치를 하시지?

라는 생각이 자다가 눈뜨자마자 들었다.


이번 일요일은

엄마도 데리고 와 같이 보내기로 했고,

다가오는 설날도 그러기로 했는데

아빠가 그새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이 가득 든다.

아니,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일요일 교회를 마치고 바로 친정집으로 향했다.

어제 저녁에 할아버지 드린다고 사 온 찹쌀떡을

주은이가 들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아무도 없었다.

혼자 계신 아빠가 걱정되는 마음으로

흔들릴 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둘째 오빠였다.

그럼 그렇지 오빠가 없을 리가 없지.

오빠는 점심을 차려주고 부침개도 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건강하실 때 자주 해주시던 김치전이 생각났다.

점심을 다 먹고 오빠는 설거지하고 치우며, 아빠 방도 깔끔하게 청소하실 때

문 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셋째 오빠가 집에 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먹보 오빠는

뭐 먹을 것 없나 두리번대며 살피고

결국 삶아놓은 계란을 다 먹어 버렸다.

그래도 아빠가 입맛은 돌아오신 걸까?

갑자기 잘 드시는 게 걱정되기도 하니

나는 무슨 마음일까?


또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는 최근 외출을 못하셨는데

이유는 독감 걸리신 어르신들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친정집에서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땐

명절날 다시 온다는 약속을 아빠와 하고

주은이와 난 장애인 콜을 불렀다.

차가 도착했을 땐

둘째 오빠는 아쉬웠는지 저녁 먹고 가지 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주은이는 피곤했는지

할아버지한테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고

바로 잠이 들어 버렸다.


명절날 아침

주은이와 함께 준비를 하고 친정집을 향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당황이 된 마음에 두리번거릴 때 알았다.

막내오빠 부부가 와 있었다.

같이 아침밥을 먹고 난 설거지를 했다.


아빠에게 새해 절을 주은이와 같이 드렸고,

난, 조카들에게 절을 받았다.

세월은 빠르다.

나와 지내며 등에 업히던 녀석들이

어느덧 청소년인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내 키보다 훨씬 클 싶다.

점심때 돼서야 큰오빠 가족이 왔다.

큰댁 큰오빠 댁에 다녀오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큰댁에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두분 다 안 계시게 되니

작년부터는 자연스럽게

큰댁 식구들과는 만나는 일이 적어졌다.

아빠는 아프시기에 가실 수가 없었고

점심으로 만둣국을 같이 먹었다.


원래는 아빠와 온 가족이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면회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빠는 기침을 많이 하신 탓에 포기하시고

나머지 식구들은 길을 나섰다.

엄마를 한 달 만에 보는 거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20분 면회가 이렇게 짧은 걸까?

그래도 행복하다.

그렇게라도 엄마를 명절날 보니 행복하다. 전과 만두를 큰언니가 챙겨 주셔서 다시 장애인 콜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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