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러지고 난 뒤오래 전 노량진역에서 봤던 포스트잇 한 장이 떠올랐다. 당시 노량진역에선 선로 보수공사 중 숨진 근로자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농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여기저기에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티잇을 붙였다. 켜켜이 쌓인 마음들을 하나 둘 훑어 보는데 삐뚤빼뚤 써 내려간 글씨가 시선을 붙잡았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지칠 때로 지친 상태였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언제쯤 이 그지 같은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 집에 가는 길에 로또나 사야지. 오만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던 머릿속은 포스트잇을 보는 순간 작동을 멈췄다. 저 아이가 조카 은준이라면, 저 근로자가 우리 아빠라면.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신이 인간에게 준 상상력은 때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데 쓰이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신은 어쩌면, 당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 능력이 보다 더 그런 쪽으로 사용되길 원할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아빠가 쓰러지고 나서야 모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내 이야기가 되었다. 아빠가 건강하기를 우리와 더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매일밤 기도한다. 나의 아빠도 당신의 아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