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이기게 하는 힘은
아빠에게 허풍이 있어서 감사하게 될 줄이야
한 달 전쯤 별안간 암환자가 된 아빠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말로만 들었던, TV에서나 봤던 무지막지하게 아프고 힘들다는 그 항암치료(여담으로 어렸을 때부터 머리카락이 뭉치로 빠졌던 나는 혹시 백혈병에 걸린 건 아닐까 자주 상상했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런 드라마를 몇 편이나 찍었더랬다. 항암치료 때문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은 어릴 때보다 배는 더 많이 빠진다. 얼마 전에도 머리를 빗는데 남편이 쓱 나타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빠지는데 대머리가 안 되는 거야? 참 신기해.").
암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빠의 경우 주사제를 투여받는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혈소판과 백혈구, 호중구 같은 수치들이 바닥을 치며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다. 아빠를 괴롭히는 암은 공격성 암이라서 진단 즉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빠는 이미 15킬로 이상 몸무게가 빠진 상태에서 항암을 시작하게 되어 더 힘들었다. 그래도 중간에 이런저런 위기들이 있었는데 무사히 잘 넘긴 것에 감사하다. 집중치료실에서 오늘 밤 중환자실로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다행이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고 퇴원 한 아빠가 자주 하는 말(체감상)이 있다. '엄마가 고생이 많지'도 아니요, '입이 써서 못 먹겠다'도 아니다. '이제 다 나았다'면 좋겠지만 이것 역시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그러는데 이 연세에 이렇게 잘 버티시는 분 못 봤다고 아빠한테 대단하다고 하더라."
사실 이 말을 듣자마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아빠는 허세에 죽고 허세에 사는 그런 남자였다(그래도 이제 좀 살만한가 보다 싶어 마음이 놓이기도). 옛날부터 아빠는 내가 뭘 해달라고 말할 때 안된다고 한 적이 거의 없다. 어릴 때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빠가 정말 다 해 줄 줄 알았다(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첫째 조카 은준이는 스무 살이 되면 캠핑카를 사준다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5살부터 줄곧 의심 없이 믿고 있다. 쯧쯧).
우리 집 형편상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대학에 들어간 이후다(아빠가 허풍쟁이라는 걸 일찍이 깨달았으면 더 악착같이 공부해서 응! 서울대도 갔을 텐데 응! 응? 아니야). 참 일찍도 깨달았지.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허풍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아빠는 자식들에게 정말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던 거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그 허풍이 지금은 아빠를 지탱하는 힘이다. 항암을 버티게 하는 힘.
아빠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긍정왕이기도 하다. 십수 년 전 작은 오빠가 사업한다며 수억을 말아먹었을 때도 아빠의 긍정은 빛을 발했다.
"남들은 아들 잃고 몇억 받았다는데 나는 아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감사한 일 아니냐."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던 즈음이었다. 아빠는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며 오빠를 혼내기는커녕 혹여나 나쁜 생각 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지금은 부모님 가장 가까이 살면서 아빠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 게 작은 오빠다. 용건이 있어야 겨우 집에 전화를 할까 말까 했던 사람이 아빠가 아프자 갑자기 효자로 거듭났다(여러분 세상은 분명 오래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도 그렇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기도하는데 뭘 걱정하냐고 믿음이 없다며 핀잔을 준다. 하나님이 낫게 하실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은 하나도 걱정 안 한다고. 잘 견뎌낼 수 있다고. 믿음과 허풍의 중간 어디쯤에서 그렇게 아빠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는 그런 아빠의 허풍을 어느 때보다 열렬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