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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최 Oct 05. 2023

평소와 같다는 위안

아빠에게는 똑같은 잔소리일 뿐이겠지만

암이 발병한 이후 아빠가 달라졌다. 가장 먼저, 그리고 눈에 띄게 변한 건 겉모습이다. 식사량이 줄면서다. 70 평생을 입맛이 없는 게 뭔지 모르겠다던, 3일 내내 같은 음식을 줘도 3일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밥을 먹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는 매 끼니 다른 음식을 줘도 입이 써서 못 먹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초콜릿이 쓰다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못 먹으니 무서운 속도로 살이 빠졌다. 키 180의 80 킬로그램의 거구였던 아빠가 2주 사이에 65 킬로그램의 말라깽이가 되다니. 암환자는 잘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에 가족들은 애가 탔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엄마와의 관계다. 엄마는 아픈 아빠가 부리는 신경질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아빠가 건강할 때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잔소리를 쏟아내던 엄마였는데 완전히 입장이 바뀐 것이다. 예민해진 아빠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고, 씻고, 자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불평이 쏟아졌다. 한창 예민할 때는 옷에서 나는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냄새까지도 역하다고 헛구역질을 했다. 덕분에 돌아가며 아빠를 간호하던 가족들은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몇 주 동안은 아침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의 컨디션을 확인했다. 어젯밤에 잠은 잘 잤는지, 열은 안 났는지. 전화를 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집에서 편히 잘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매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번은 엄마가 축 쳐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힘들어도 항상 밝은 목소리를 내던 엄마였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혹시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빠가 엄마 말을 안 들어. 얼마나 짜증을 많이 내는지 몰라. 서러워서 눈물이 나."

"엄마, 언제 아빠가 엄마한테 뭐라 한적 있어? 평생 동안 아빠가 엄마 말 다 들어주고 살았으니 조금만 받아줘 봐."

"그래, 그러니까 더 서러워.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니까."


어쩌면 엄마는 단순히 아빠가 신경질을 많이 부려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평소와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덜컥 겁이 나는 것일지도. 저러다 어떻게 될까 봐. 아빠를 영영 못 보게 될까 봐.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인지, 1차 항암이 끝나고 아빠는 스스로 거동을 하시면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거의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의사는 6차까지 예정된 항암 치료 기간 동안 항암제를 투여할 때만 병원에 오면 된다고 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시니 아빠의 퇴원 준비는 우리 삼 남매의 몫이었다. 40 평생 세상 쓸모없는 게 오빠 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쓰러지고 나니 이렇게 의지가 되고 든든할 수가 없었다. 평생 동안 통화 한 횟수보다 근 한 달간 연락한 횟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맡아 처리했다. 누구 하나 싫은 내색 하거나 미루지 않고.


아빠를 맞을 준비를 하며 제일 먼저 화분을 싹 치우고 세스코를 불러 집 전체를 소독했다. 낡은 통돌이 세탁기를 드럼 세탁기로 바꾸고 무선청소기와 공기청정기를 들였다. 오래된 가전들은 진작에 생신이나 추석 명절을 핑계로 바꾸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어떤 부모들은 때마다 뭐 해달라 뭐 사달라 한다는데 어쩌면 엄마 아빠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기만 했는지. 이번엔 아빠가 아프니 엄마도 별수 없나 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그래도 식기세척기 등 몇몇은 빠꾸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신 아빠는 한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반면 삼시 세 끼는 물론 간식까지 챙겨야 하는 엄마는 눈코 쓸 새 없이 바빠졌다.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까지 몽땅 엄마 차지가 되자 의자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다면서 전화도 빨리 끊으란다. 그리고 다시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잔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기다리라니까. 내가 해준다고! 말을 저렇게 안 들어요. 가만히 있어봐!"


엄마가 전화 통화 하는 사이에 조금 기운을 차린 아빠가 혼자서 뭘 해보려다가 실수를 했나 보다. 엄마의 구받이 쏟아지자 아빠가 뭐라고 뭐라고 항변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꼭 아빠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아빠의 컨디션이 괜찮다는 말에 추석 명절, 부모님 댁을 찾았다. 아빠의 손을 잡고, 꼭 안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아빠,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 빨리 먹으면 안 돼."


아빠가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다. 아빠는 느릿느릿 밥을 먹으면서도 평소처럼 생선을 발라 내 밥그릇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늘은 입맛에 좀 맞나?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밥을 몇 술 뜨는가 싶더니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았. 음식이 싱겁단다. 아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냉큼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빠가 말했다. 반찬투정하면 안 되는데, 안 하려고 하는데 당신도 모르게 투정이 나온다고. 아빠는 식탁에 앉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 무슨 생각했냐면, 너네 엄마 은행 이자도 제대로 계산할 줄 모르는데 내가 없으면 어떡하나 그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우리 딸내미 울고 있을까 봐 걱정했지."


아직은 걸을 때마다 훌렁거리는 아빠의 바지자락에 눈시울이 붉어져 당황스럽지만, 짧게 민 머리카락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코끝이 시큰하지만, 감사하다. 아빠와 눈을 맞추고 같이 밥을 먹고 이 삶에 함께 할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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