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는 겨우 여섯 알

나눠 먹는 연습

by 혜준

지금도 생각난다.

집에 돌아와 습관처럼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깨끗한 유리그릇에 한가득 먹음직스럽게 담긴

체리가 들어 있었다.

70년대 바나나 정도는 아니었지만

90년대 체리도 마트에서

부담 없는 가격으로 살 수 있진 않았다.

먹는 것에 진심인 엄마는

삼시 세끼 외에도 늘 과일을 챙겼다.

다른 형제들이 결혼과 진학, 군대 등으로 집을 떠나

집에는 부모님과 나만 지냈던 시기였다.

언니는 첫째니까 오빠는 장남이니까

남동생은 막내고 아들이니까....

나는 늘 찬밥....이라고 투덜대던 난

엄마가 나만을 위해

준비해 놓은 과일이라는 것에 내심 무척 기뻤다.


여기서 제일 적응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과일이었다.

도대체 누구 먹으라고

코딱지만큼 조각 내 포장해 놓고

가격은 또 왜 그리 비싼지....

일본 사람들은 과일을 싫어하나?

아니면 가족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먹나?

특히 딸기는 압권이다.

바닥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손바닥만 한 팩에

밑에는 작은 딸기로 채우고

위에는 나름 굵직한 딸기를 올려

눈속임을 한 딸기를 보면 분노마저 치밀어 오른다.

그걸 재배하신 농가의 수고는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맛난 딸기를 많이 먹고 싶은 소비자로서는

감질나기 그지없다.


딸아이는 과일 중에서도 특히 하필 딸기를 좋아한다.

착한 딸이다.

내 체리의 기억이 강렬해서 내 딸에게도

그런 감동을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코딱지만큼 한 비싼 딸기를 사면 깨끗하게 씻어서

꼭지를 정성껏 따 귀가할 딸을 위해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곤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일이라면 기겁을 하는 동생 덕분에

딸아이는 과일을 경쟁자 없이 만끽한다.

착한 동생이다.

크리스마스 때 바가지요금을 달고 마트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딸기도 2월이 되니

바가지에 금이 갔는지 조금씩 가격이 내려가긴 한다.

그래도 딸기팩에 손을 내밀자면

아직은 심호흡이 필요하다.


어제 딸기를 사서 씻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식탁에 앉아 있는 남편의 뒤통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난

딸아이가 딸기를 맛있게 먹기 시작한 때부터

딸에게 한 알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남편의 몫까지 다 주고 있었다.

남편도 나도 언젠가부터

딸기를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갑자기 측은해졌다.

남편은 앞으로 딸기 먹을 날이

딸아이보다 훨씬 적지 않은가.

제일 큰걸 두 개 골라 꼭지를 따서

식탁 앞에 살짝 놓으니 깜짝 놀란다.

놀라기까지.....

자긴 괜찮다며 딸아이 주라고 한다.

아직 많이 있다고 먹으라고 하니 피식 웃으면서

맛있다며 짭짭 먹는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부성애다.

내가 내 체리 감동에 취해서

정작 우리 신랑 딸기 맛 잊어버리게 할 뻔했다.


아직 많이 있다고 돌아서서 딸기팩을 바라보니

에게게.... 딸기는 겨우 여섯 알.....

언젠가 이렇게 콩 한쪽 나눠 먹는 사랑도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 딸이 알았으면....


혹시 일본 사람들은

이런 나눠 먹는 소중함을 알고 알리기 위해

일부러 바닥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손바닥만 한 팩에

코딱지만큼 딸기를 담아

비싸게 사고팔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