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 얽힌 이야기
주말 새벽이면 셀프 세차장을 찾는 게 오랜 된 습관이다. 몇 천 원에 작은 수고를 보태면, 내 애마의 전신 목욕을 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차의 내, 외부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에 그곳을 주로 이용하는 것은, 사람이 별로 없어 순서를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단골 세차장을 찾았다. 예비 세척, 거품 솔, 고압 헹굼을 하고 물기만 닦으면 세차 끝이다. 그때마다 마치 내가 샤워라도 한 듯 상쾌해진다. 그런데 그날 차를 한쪽으로 이동해 마른 수건질을 하다 말고 세차장 구석에 내 팽개 쳐 있는 것들을 보고는 상쾌가, 불쾌로 바뀌었다.
분명 이른 새벽에 누군가들이 버리고 간, 차에서 나올 쓰레기가 아닌 이런저런 생활 쓰레기들. 그런데 그날은 그 쓰레기들 중에 낡은 자동차 매트 세트(총 5피스)를 보고 한숨이 났다. 아마 새로 매트를 사면서 헌 것을 버린 것 같다. 그것을 담아 버릴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요즘은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새벽에 그 누군가는, 몰래 그것을 버리고 가면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봉투 값 벌었다고... 자동차를 몰고 다니느라 허리가 휘어 봉투 살 돈이 없었나 보다.
얼마 전 그날도 새벽 시간이었다. 황성공원 도서관 쪽 산책로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미니 쓰레기장(대형 쓰레기봉투 두 개만 달랑 세워져 있음)에 버려진 낡은 골프백을 보고 버린 이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었다. 골프장을 들락거리느라 쓰레기봉투 아니 폐기물 스티커 살 돈이 없었겠지. 아니 열심히 일하느라 주민 센터 근무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스티커를 못 구했겠지. 아니면 공원 청설모에게 별장(골프백)을 마련해 줄 의도였는지도 모르지...
그는 분명 어둔 새벽에 그 큰 골프백을 차에서 꺼내면서 주변의 눈을 살폈을 거다. 그리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그 백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듯 사라졌을 거다. 그리고 자신의 ‘부지런함과 알뜰함과 기민함’에 만족스러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을지도 모른다.
세차장에서 산책로 입구에서, 나는 그들의 얍삽함에 손가락질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마치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다는 듯이, 하지만 돌이켜 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그런 종류의 인간임을 알고 부끄러워졌다.
자동차 매트나 골프백 같이 부피가 큰 건 아니었지만 나도 테이크아웃 컵 혹은 먹다 남은 컵라면 컵 등을 버리지 말아야 할 곳에 버린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렇게 버린 쓰레기가 부지기수일 거다. 그들이나 나나 도진개진이다.
며칠 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황성공원 맥문동을 찍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이 전경만 찍기에, 나는 클로즈 업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삼각대를 최대한 낮추고 쪼그리고 앉아 앵글과 노출 등을 맞추는데 불편했다. 마침 들고 간, 접으면 20여 cm 밖에 안 되는 미니 의자를 꺼내 앉아 있다가 의자가 부서지는 바람에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오랜 된 의자가 삭아서다. 결코 내 몸무게 때문이 아니다. 팩트다. ㅠ
민망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나는 그 부서진 의자를 숲 속에 숨겼다. 아니 버렸다. 아침 햇빛이 다른 숲으로 이동하자 나도 따라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 시간이 지났다. 배가 고팠다.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다 말고 부서진 의자 생각이 났다. 망설였다.
겨우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의자인데 뭘. 내가 버린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누군가는 혹 그걸 수리해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말 같지 않은 합리화로 되돌아가지 말자고 내 안의 어둠이 내게 속삭였다. 배. 고. 프. 다. 피. 곤. 하. 다. 그. 냥. 가. 자.
그냥 집으로 갈 뻔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쓰레기를 꺼내 막 버리면서 갔다. 타박타박 걸으면서 소나무 가지에 걸었고, 녹색 잡초들 숲 속에 던졌으며, 황토 빛 산책 길 위에...
버린 쓰레기는 내 잠재의식에 묻어 있는 오염물이었다. 잘 포장된 이율배반이었다. 기만이었고 허위였으며 비겁과 핑계였다.
잠시나마 나로부터 버림받아 방치된 의자를 수거해 제대로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나서, 나는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 영혼아, 착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고 살자. 선물로 아점 때 반주 한잔 주는구먼. ㅎ)
그런데 그날 오후에 아주 우연한 일이 일어났다. 면도할 때 사용할 작은 손거울을 사러 들른 마트에서 아침에 부서진 그 정도 크기의 간이 의자를 발견한 것이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부서진 그 전 것보다 훨씬 튼튼해 보였다. 가격도 엄청나게 쌌다. 인터넷 쇼핑 택배비보다 싼, 단돈 2천 원이었다.
무슨 은도끼 금도끼도 아니고... 하여튼 그것을 사들고 집에 와 혼자 히죽 거리며 흐뭇해하자, 식구들이 궁금해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하고 마치 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오해할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앞으로도 ‘차카게 살도록 하자’
그런데 좀 이상했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내가 주워 버린 게 과연, 당연을 넘어 착한 일인가? 아무래도 나는 아점 때 반주 한잔을 하면서, 더위를 안주 삼아 먹은 것 같다. 낮술을 마시면 자기 부모도 못 알아본다더니만...
<차칸... 빛 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