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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Aug 06. 2022

맹자를 소환하다

화무십일홍

맹자를 소환했다. 그 맹자의 사상 중에서 <민본사상과 왕도 사상>에 내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맹자의 사상이 낯설지 않았다. ‘백성을 仁政으로 다스리는 것’이, 왕도 사상이라고 것도 학창 시절 귀동냥으로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맹자는 有恒産 有恒心을 말한다. 이것을 가지지 못하는(선비는 가능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다고 한다. 나라에서 그런 사람들을 족족 잡아다 형벌을 가하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사기라고 일갈한다. 2천 년도 훨씬 지난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 조선’ 같은 거다. 이것도 어찌 낯설지만 않다.


尊賢使能(인재를 발굴해 관직에 임명)을 말한 맹자는, 시장에 창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보관세를 걷지 않고, 국경에서 통행세, 공전을 경작하는 이외에 세금, 그리고 인두세 등 백성들의 각종 세금을 경감해 준다면, 그 나라는 天下無敵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왕도를 구현하지 않아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천하를 잃게 된다는 대목에서, 아니 임금이 무도하여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면 그 임금은 갈라치워야 한다, 라는 말에 나는 살짝 흥분까지 했다. 맹자가 역성혁명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는 거였다.


위화도 회군으로 역성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게 ‘왜 고려를 무너뜨려야 했는지?’에 대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때 그의 책사였던 정도전인 들고 나온 게 <맹자> ‘양혜왕 하’ (8장)에 나오는 논리였다.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曰, “臣弑其君, 可乎?”

曰, “賊仁者謂之‘賊’ ,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제나라를 찾아온) 맹자에게 선 왕이 묻는다. “(옛날) 하나라의 주 왕이 탕 왕에 의해 추방되고 (그렇게 세워진) 상(은) 나라의 주 왕도 (주나라를 세운) 무 왕에 의해 토벌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렇게 신하가 자기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러자 맹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독설(?)을 날린다. “인(仁)을 해치는 자는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잔(殘)이라 하지요. 이러한 적과 잔을 일삼는 사람을 일부(一夫, 필부)라고 하지, 임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 왕이 주(紂)라는 필부(평범한 사내)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당시 정치와 문화의 대세였던 유학에서는, 신하는 결코 군주를 시해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반인륜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는 인정을 펼치지 못하는 군주는 임금도 아닌 그냥 필부에 지나지 않으니, 내쫓거나 심지어 죽여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 왕은 자기 나라를 찾아온 맹자에게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며, 옛날 하나라와 상(은) 나라의 역성혁명의 부도덕을 들먹였던 것이다. 하지만 가제는 게 편이라고 선 왕은 맹자가 자기편을 들어주기 기대하며 던진 질문이었는데, 맹자의 대답은 싸늘하기만 했다.


맹자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종의 도덕 정치론을 천하의 패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통치자의 제대로 된 仁義禮智가 국가 전체에 확장될 수만 있다면, 백성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군주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황제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함량 미달의 임금은 애당초 아웃되어도 무방하다는 맹자의 말이,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설득력이 있었지만, 당시의 군주들은 <자격 없는 통치자를 내쫓는 ‘혁명의 논리’로도 사용될 수 있는 맹자의 말>이 두렵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천하를 통일해 황제 되기를 꿈꾸던 7웅의 전국시대 군주들도 이런 회초리 같은 맹자를 가까이 두고 쓰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 어느 군주도 맹자를 신하로 받아 주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공포와 전두환의 쿠데타를 겪으면서 젊은 날 적당히 숨죽이고 타협하며 살았던 나는, 맹자의 논리를 곰곰이 되씹어 본다. 그리고 그들의 등장이 마치 天命이라고 말하고, 그들 통치의 정당성에 대해 떠들어 대며 추앙하던 그때 그 사람들이 이 맹자의 이 논리를 알고 말한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광화문 탄핵 집회 때, 내가 집을 나선 이유가, 아직도 그 상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들자,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내일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다. 요즘처럼 날이 덥다 보니 이 단어 한 마디도 정겹다. 그러나 요즘 우리 정치판은 갑갑하다. 만국의 통치자들이 맹자가 말한 尊賢使能하여 不忍人之心으로 不忍人之政 (다른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인한 정치)한 통치 철학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맹자>의 마지막 쪽을 닫으며 창밖의 시들어 가고 있는 해바라기로 시선을 돌린다. 모든 것은 시작과 때가 있다. 정권도 마찬가지다. 다 때가 되면... 그런데 왜 그들은 그때를 모르는 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맹자는 인의 정치를 군주들에게 말했으나 군주들은 회초리 같은 그를 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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