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철 Francis Aug 08. 2022

생각은 바다를 품고,  문장은 비린내를 낸다

울림판을 가슴에...


오래전 대학교 3학년 어느 가을, 영문학 수업 시간이었던 것으로 그는 기억한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낳았고, 스페인은 세르반테스를, 프랑스는 몽테뉴를 낳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1601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제1권은... ”


노교수의 강의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뒷자리에 있던 J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질문을 허락받자 J가 목맨 소리를 했다.


“졸업해도 취업이 만만하지 않은데 지금 수백 년 전에 있었던 문학 공부는, 현실성 없는 사치고 낭비며 기만입니다. 차라리 이 시간에 토플 공부나 할 수 있도록 자습을 청합니다.”


이 황당한 요청에 노교수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조용한 어조로 답했다.


“제군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문학도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거다. 나 또한 문학을 가르치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거고...”


그리고 이어지는 노교수의 타협안으로 그 작은 소동은 끝이 났다.


“나 또한 현실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취업공부를 할 사람들은 조용히 하도록. 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나도 본분을 지킬 테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한숨 쉬던 그날 J의 모습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수업을 마치자, 같이 수강했던 Y가 자기 자취방에서 저녁 겸 한잔하자고 그를 꼬드겼다. 마침 그날 마지막 수업이었고 딱히 약속이 없던 그는, 막걸리 두병을 사 들고 Y의 토굴로 들어섰다.


시인을 꿈꾸는 Y의 책상 주위에는 습작시를 갈겨쓴, 수 십장의 원고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디서 끌려 왔는지 목이 긴 정종 병이 재떨이가 되어 담배꽁초를 가득 안고 있었다.


전날인지 혹은 전전날인지 신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끓여둔 찌개가 유일한 반찬이었다. 국처럼 찬밥을 말아 허기를 달래고, 막걸리를 숭늉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수선한 시국 이야기가 첫 단추였고, 몇 시간 전에 강의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한참 동안 둘 사이에 머물렀다. 현실과 미래의 괴리가 안주였고 화두였다. 상심해하며 줄 담배를 피우던 Y가 자작 시인지 아닌지 몇 편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


생각은 바다를 품고 / 문장은 비린내를 낸다.


.........


막걸리 몇 잔에 살짝 취기가 돈 그가, 이 시구를 몇 번이나 읊조렸다. (수 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는 이 시구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러자 Y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기억을 그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J는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힘 있는 정부 부서에서 승승장구했다. 몇 년 전 만났을 때, 자신의 출세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술 한 잔 마시고는, 묻지도 않은 아들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들놈이 대학 전공을 문사철(문학,역사,철학) 비슷한 과에 간다기에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으름장을 났어. 젊은 애가 시대감각이 없어...” 그는 올해 초에 정년퇴직하고 옮긴 기업체에서 비록 계약직이지만 적지 않은 연봉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었다.


그 보다 더 오래전 그는 서울을 떠나기 전에 Y와 함께 차를 한잔 마신적이 있다. 아직 시인으로 등단하지 못했다고 했다. 혹 한다한들 전업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나름 유명한 출판사 편집장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많지 않은 급여라 이거 저거 제하고 나면, 막걸리도 제대로 못 사 먹는 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한 참 뒤, 출판사를 그만둔 그가 문학평론가로 일한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세상 눈으로 본다면 J의 삶은 성공적이고 Y의 삶은 실패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말이, 늘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다.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JY가 가지지 못한(혹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울림판>을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숨기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것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고 들으며 맡고 사색하려고 노력한다. 시시한 먹거리들로부터 언제나 만나는 햇볕과 바람, 오늘 같은 장맛비 속에서도.


단순하고 직선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성찰과 모색적인 사고를 지향하고자 한다.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울림판을 두드리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인문학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이고, 물구나무를 서는 일이며, 삶의 힘을 소진하는 것이라는데, 그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인문학으로 밥을 먹고살지 않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밥이 맛있다는 사실은 인지하며 산다. 생각은 바다를 품고 문장에서 비린내를 맡으며, <맛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은 늘 옳다고 생각하면서.


                                           <생각은... 비린내를 낸다> - 감포 주상절리








매거진의 이전글 맹자를 소환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