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개천과 바다
우리는 새벽 청소차를 통해서도 클래식을 듣는, 들었던 민족이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한 때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청소?를 위하여> 청소차 스피커를 통해 새벽마다 무차별하게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대단한 인문학적인 민족인 것 같다.
어제 늦은 귀가 길에 차에서 클래식 한 곡을 우연히 듣고... 늦게 까지 잠들지 못했다.
학창 시절 어느 날, ‘빠바바밤! 빠바바밤!...’ 음악 수업 시간에 이 곡을 듣고 우리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음~ 베토벤의 <운명>이군.’ 워낙 유명한 곡이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곡인데, 쌤이 그 곡의 정확한 이름은 운명이 아니라고 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이 곡은 제목은 이렇단다.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헉? 운명을 독일어로 쓴 건가?)
왜 이러는 걸까... 예를 하나 들어 본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을 할 때 ‘순두부 약간, 계란 1알과 바지락 150g 그리고 대파 30g’을 끊여서 달라, 혹은 간단하게 ‘순두부찌개’라고 시키면? 결국은 같은 음식이 나온다. 그렇다 표현만 다른 거다.
<Beethoven ...> 독해는 이렇다. <베토벤이 만든 곡. 그의 심포니 중에서 5번째 작품. C 단조고 발표(출판) 번호, (오퍼스-작곡가마다 다르게 표기하기도 함) 67번다> (67 뒤에 번을 붙이면 안 됨) 이렇게 곡 이름이 기니깐, 후세 사람들이(악보를 인쇄해 팔던 출판사) 심플하게 그 곡을 <운명>이라고 명하고 그렇게 불려진 거다. 고전음악들 중에 편리상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광>, 쇼팽의 <겨울바람> 등.
그 시절 다니던 학교가 ‘합창단’으로 유명한 덕에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와 합창단원들의 노래를 자주 들을 기회가 많았다. 열정적인 음악 쌤과 이리저리 고전음악에 대해 알아보던 내 호기심이, 그 후 열정으로 이어졌다.
‘심포니, 필하모니, 교향악단, 오케스트라’는 다 같은 말이다. ‘관현악단’을 말하는 거다. 단, 심포니와 필하모니는 앞에 도시 이름이 붙는데, 필하모니는 심포니보다 상대적으로 좀 고급(?) 진 곳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런던심포니, 뉴욕필하모니...등 메이저와 마이너의 차이, 소나타와 녹턴의 구분, 에튜드와 콘체르토의 의미 등.
그 즘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문학책에서 처음으로 읽은 게 아니라 들었다.(?) 이제는 잊힌 어떤 시인이 그 곡을 운운하면서 하도 서러워하기에 세운상가라는 곳에 가서 LP 빽판(복제판)을 사서 들었다. 슬펐냐고 물으면 작가의 글만큼 서럽지는 않았다. 도리어 성인이 되어 만난 <샤콘느>가 더 진하게 다가왔다. 어제 우연히 오랜만에 차에서 듣는 곡이 이 곡이었다. 제목은 <Bach: Chaconne from Partita for solo violin No.2 in D minor, BWV.1004)다. 줄여서 <샤콘느>. 정경화, 사라 장, 신지아 등이 연주했는데 개인적으로 사라 장이 좋았다. 이 곡은 몇 년 전 남북 정상회담에서 연주되어 유명해진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바흐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 중에 나오는 곡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반주란 반주(식사 때 한잔 술?)를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 없이 바이올린으로만 연주한다는 거다. 나는 음악적 지식이 별로라 잘 모르지만 클래식에서 피아노 없이 독주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들었다. 특정 악기가 피아노 반주 없이 솔로로 연주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독주 악기 연주 시 연주자의 기량의 한계나 미세한 실수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고 한다. 옆에서 피아노가 연주되면 슬쩍 넘어갈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바흐를 ‘서양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얼핏 들으면 바흐가 음악을 처음 만들었다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음악을 크게 발전시키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헨델은 ‘서양음악의 어머니’라 불린다. 아버지와 어머니... 1685년 독일에서는 ‘우주의 음악적인 기’가 차고 넘쳤난 듯하다.
왕과 귀족 등의 후원 등으로 잘 먹고 잘 산 헨델과 달리 바흐도 미술계의 고흐처럼 고단한 삶을 살았다. (이름도 잘 지어야 한다. 끝자리가 ~흐로 끝나면...) 바흐는 두 번 결혼한 탓에 자식이 스무 명이나 됐다. 많이 벌지도 못하는 형편에 경제적으로 쪼든 삶을 살 팔자였다. 말년에는 베토벤처럼 장애를 당한다. 시력을 잃은 것이다. 사후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가 쓴 악보들도 헐값에 팔려 이리저리 흩어지고 만다.
사람들은 바흐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바흐의 종교적이다. 마치 수학 공식을 대입하든 엄격하고 절제된 음악을 만들었다. 깔끔한 맛은 있지만 대중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반면 헨델은 “그는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오페라에 손을 댔고 온갖 기료를 통해 화려한 아름다음을 추구해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요즘 말로 MSG를 팍팍 뿌렸다는 거다.
같은 독일에서 태어난 동년배였지만 헨델은 바흐를 알지도 못했다. 헨델은 당시 독일과 영국 사회의 상위 몇 %에 해당되는 사람이고 바흐는 지지리 궁상을 떨던 사람이다. 하지만 1백 년 후 한 음악가에 의해 바흐는 재평가된다. 그 인물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멘델스존이다. 평소 바흐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가 어느 날 푸줏간에서 포장지로 사용되고 있는 바흐의 악보를 발견하고서는, 흩어져 있는 바흐의 악보들을 찾아 내, 세상에 알린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바흐를 알게 된 것이다.
멘델스존의 그 수고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자주 접하는 그 수많은 바흐가 작곡한 <종교 칸타타>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G 선상의 아리아>도, 아직도 여전히 가슴 저리게 하고 잠들지 못하게 하는 <샤콘느>도.
나이가 드니 새로운 것보다 자꾸 지난 것을 더듬어 보는 요즘이다. 이런 바흐를 천하의 베토벤은 '바흐는 실개천(Bach-독일말로 실개천이라는 의미) 아니라 바다(Meer)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맞다. 나도 실개천이 아니라 바다를 꿈꾸는 삶을 살기 내기를 소망해 본다.
사라 장, 장영주다. 그녀의 연주가 좋은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이다.
이 글도 그렇다. 나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다. 단지 애호가 일뿐. 서툰, 혹은 잘못 표현된 음악적 표현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개인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