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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Aug 07. 2022

휴가 후기

내년 이 맘 때 나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영문 독해 책 한 권을 몇 번 읽어 낼 욕심을 냈다. 평소 영어 쓸 일이 없어 잊어버린 단어들도 챙기고, 막내에게 영어공부 자극을 줄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겨우 일독으로 끝내야 했다. (그래 급할 것 없다. 매일 조금씩 더 읽어내자) 라며 스스로 변명 아닌 위안을 하면서.


여름휴가를 맞아 계획을 세웠다.

1) 남해로 사진 출사 가기 2) 서재 정리하기 3) 오래전부터 맘에 두고 있던 책 몇 권 한 번씩 더 읽어 내기 4) 온종일 황성 숲길 걷기 5) 낮술 아니 새벽 술 먹어보기 6) 그리고 글 몇 편 쓰기


3일의 짧은 휴가가 끝났다. 이 날은 어김없이 분명 다가오지만, 사람들은 오지 않을 거라고 헛된 망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러면서 그 망상 속에서 휴가 전에는 계획을 세운다. 나도 그랬다. 가족 여행, 아니면 홀로라도 여행,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던 것 하기, 등등


가족 여행은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애초 불가능했고, 홀로 남해로 사진 출사를 갈 생각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몇 년 동안 벼르고 벼르던 서재 정리는, 휴가 첫날 오전 내내 땀을 흘리며 책과 사진 액자들을 가지런히 해 놓았다. 하고 나니 뿌듯했다. 산다는 것은 버릴 것을 버리고, 담을 것을 담아야 하는 데... 미련 많은 나는, 참 모질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휴가 계획한 것 중에 하나인 황성공원을 나돌다가 매년 이 맘 때면 늘 만나는 맥문동을 만났다. 또 울컥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묶어 두고 셔터를 눌러댔다. 피사체는 바로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보랏빛 흔들림이었지만, 기억은 오랜 전부터 묶여 있는 추억을 더듬으며 찍어 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칼국수 생각에 자리를 털었다.


새벽 술과 낮술은 마셔 보았지만, 글은 단 한자도 쓰지 못했다. 스스로 일주일에 두 세편은 꼭 쓰자는 각오를 오래전부터 했고, 실천해 왔지만 달콤한 휴가는, 내게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대신 틈틈이 손 가는 대로 책 몇 권을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주로 잠들기 직전이나 새벽에 잠이 깼을 때- 읽고 연필로 책 여백에 내 생각들을 메모한 것이 전부였다.


휴가 마지막 날은 도수치료를 받았다. 몇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받고 있는 이 치료는 오른쪽 어깨 주변의 근육을 찢는 듯한 고통을 동반한다. 치료사 말에 따르면, 퇴행성의 결과란다. 몸은 나이를 결코 망각하지 않는 듯하다.


공직생활을 마치고 올 초에 퇴직한 동기로부터, 며칠 전에 벌써 하루하루가 지겨워 죽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개가 갸우뚱했다. 왜? 나 같으면 하루하루를 잘게 나눠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해 뜬 직 후 경주 이곳저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그리고 황성 숲길이나 보문 호반 길을 걷고 수영장에 들러 몸을 깨우며 적당한 아점으로 끼니를 때우기.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었던 혹은 다시 읽고 싶었던 책 들춰보기. 그렇게 서너 시까지 나돌다 귀가해 반주 한잔에 이른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글쓰기.


일상의 이런 패턴도 하루 이틀이지 곧 지겨워질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 요일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 내 플랜 2다. 월요일에 일출 등을 찍으러 동해안을 따라 오르거나 내려가기. 그러다 어느 한적한 곳을 만나면 1박도 좋고 2박 이면 어떠냐. 


주중에 책을 읽을 거다. 몇 해 전부터 고전음악과 서양미술사, 철학 등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기에 체계적으로 읽어 보는 게 내 작은 소망이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서평도 쓰고 하루에 한편 이상 내 흔적을 글로 꼭 남길 거다. 서울로 대구로 부산으로 오페라나 전시회를 찾아가 보는 거다. 틈틈이 캘리그래피도 칠 것이다.  몇 해만 더 공모전에 참가해, 입선 이상을 하면 신라 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는 데, 그것도 꼭 마무리할 것이다.


일반 회사에 근무하던 벗들 중에 벌써 은퇴한 이가 여럿 된다. 공직에 있던 벗들도 올해 대부분 은퇴했다. 아직 현직에 남아 있는 이는 대학 등 교직에 근무하는 이들뿐이다. 나도 아침마다 퇴직을 꿈꾸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내년 이 맘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가끔 궁금할 때가 잦은 요즘이다.


                                                          <한 여름의 정(靜)>


                                                           <한 여름의 동(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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