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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Aug 19. 2022

내가 내게 카톡을 보내는 이유

무딘 연필이 낫다

나는 나하고 카톡을 통해서 일방적인 채팅을 자주 한다. 말이 채팅이지 일종의 나의 메모를 저장하는 변형된 방식이다. 어느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카톡을 통해 내가 나에게 그 생각을 보내는 거다. 잠자리 전후에, 운전 중 신호대기 때, 누군가와 대화 중이거나 산책 혹은 술 마시는 도중에도, 언제든. 


펜이나 메모지보다 핸드폰이 가까이 있다 보니 나는 이 방법을 선호한다. 독일 속담에 '기억력이 좋은 머리보다 무딘 연필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비록 연필 끝이 무디긴 해도 메모를 하면 가장 정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무딘 연필’ 대신 ‘핸드폰’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런데 이 방법에 문제가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긴 문장을 쓰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어나 단문 위주로 입력한다. 최근 입력한 것들을 되짚어보니... <모히또/ 30년 된 옷/ 글 쓰는 게 후시딘/ 동방박사는 세 사람이 아니다/...> 등등.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의 끝을 이어 주기도 하고, 며칠이 지나면  글의 소재나 주제가 된다. 또는 해야 할 일의 물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입력시켜 놓은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기억이 아리송할 때도 간혹 있다.


분명 무슨 생각에서 입력시켜 놓았겠지만... ‘바퀴벌레와 우동’ 등이 그런 경우다. 이런 정체불명의 단어가 많지는 않지만 몇 개 내 카톡방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럴 땐 그것의 의미가 다시 기억이 날 때까지 지우지 않고, 그 실타래가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도, 내가 나에게 보낸 카톡에 있었다. 메멘토 모리, 번역하면 <기억하라, 죽음을>이라는 뜻의 ‘동사 + 목적어’로 구성된 라틴어 단문이다. 의역하면 ‘너는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다. 일종의 경구(警句)다.


옛 로마 시절 개선장군이 화려한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이 말을 크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즉 ‘승전했다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는 너도 죽는다.’라는 의미에서.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렇다면 우리 귀에 익숙한 <카르페 디엠-즐겨라, 현재를>과는 어떻게 다를까? 전자는 죽음을, 후자는 현재를 말하지만 크게 보면 그 메시지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지금을 즐겨라.’


이런 논리의 연장선으로 본다면 “인생은 지금이야…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노래 <아모르파티-사랑하라, 운명을>도 유사한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방문한 대구 가톨릭 대학 유스티노 캠퍼스 내, 성직자 묘지 입구 양 기둥에 새겨져 있는 ‘호디에 미히 카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글도 엄밀히 말하면 상기(上記)된 라틴어 표현들과 같은 뉘앙스다. (오늘은 내가 관 속에 들어와 있지만, 내일은 너도 들어갈 것이니, 즉 타인의 죽음을 통해 너의 삶을 생각해보라는 의미)


카톡의 힘은, 아니 메모의 힘은 이렇게 세다. 메멘토 모리에서 시작한 단상이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어... 성직자 묘지까지. 잠이 잘 안 올 때 이런 생각을 잇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곤 한다. 문제는 이렇게 잠든 날에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꼭 꿈을 꾼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입추를 지나 벌써 처서 코 앞이다. 이제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방금 전 멸치로 육수를 낸 국수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찬 커피 한잔을 입에 물고 창을 통해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고 있다. 비 때문에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그리고 몇 개의 단어를 내 카톡방에 남긴다.


<비 오는 날 수채화/ 100세의 도주/ 삶에 또 다른 리셀 웨폰>... 이 단어들은 나중에 내 생각이나 글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바퀴벌레와 우동’이라는 말을 내가 왜 카톡에 남겼는지 기억이 났다. 그리고 줄이어 ‘터미널 식당과 샤부샤부 집’에서 있었던 기억까지도... 메모는 이렇게 불사신처럼,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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