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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Sep 08. 2022

샤인 머스캣

~의 뜻은, 윤기 나는(샤인) 포도 품종(머스캣)이란다

이틀 후면 추석이다.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그는 몇 해전 일이 떠 올라 혼자 웃곤 한다. 그 해 추석 전전날 차례 상을 차리기 위한 장을 보러, 그는 아내와 함께 동네 대형마트엘 갔다. 명절 앞이라 들락거리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주차장에 차대기가 여의치 않았다. 겨우 주차하고 아내가 준비해 간 메모를 보면서 카트에 물건을 담았다.            


이것저것 요리할 재료와 차례 상에 오를 먹거리들을 샀다. 게다가 평소 잘 먹지 않던 삶은 문어도 제법 큰 걸로, 모친이 즐기시기 때문이다. 과일 코너에서도 배, 사과, 대추, 멜론, 포도... 등을 챙겼다. 


(추석이다. 오곡백과의 이 풍요로움을 조상님들과 나눠야 한다. 이럴 땐 돈 아끼지 말고 가장 좋은 과일들을 사야 한다)라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다. 카트가 가득 찼다. 그때 그의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다.


“샤인 머스캣이네...” 그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그게 뭐냐고 아내에게 눈으로 물으니 청포도 비스 무리한 것을 가리킨다. 딸이 TV를 보면서 먹고 싶다고 했단다. 그러자 그가 세 송이를 집어 카드에 담으려고 하니, 아내가 한 송이만 하잖다.


딸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한 송이 가지고 되겠냐고 그가 말하자, 아내가 가격표를 보란다. 한 송이 1,500원. 세 송이라고 해봤자, 사천 오백 원. 까지 거 기분이다, 라며 호기를 부리는데 아내가 피식하고 웃는다.


그가 다시 가격표를 보니, 한 송이에 1,500원이 아니라 15,000원이었다. 옆 매대에 있는 어른 머리만 한 멜론도, 채 팔천이 되지 않는데 포도 한 송이에... 대충 계산해 보니, 한 알에 얼추 삼백 원 꼴이다.   


포도 네 알이면, 그가 좋아하는 소주 한 병 값과 맞먹는다. (어쩜 그는 꼭 비교를 해도 모든 걸 술과 관련시키는지 모를 일이다) 하여튼, 그 정체불명의 포도는 단 한 송이만 사기로 했다. 절대 돈 때문은 아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맛의 정체를 모르니...ㅋ... 라며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평소 절대 하지 않는 충동구매로 산, 샤인 머스캣. 은은한 망고 향이 나서 망고 포도라고도 한단다. 과육이 크고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란다. 당도가 24 브릭스 정도여서 단맛이 일품이란다. 그러나 장을 보고 와서 그는 그 포도를 잊고 있었다.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나니 상 위에 그 포도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과일들은 다들 여러 개가 포개져 한 접시를 차지하고 있는 데, 샤인 머스캣을 달랑 홀로 접시 위에서 가로누워 있었다. 마치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인 머스캣 아니 샤론 스톤처럼 요염하게. 


차례를 마치고 한 알에 거금(?) 삼백 원짜리 포도를 그의 모친의 입에 넣어 드리자, 큰 감흥 없이 그냥 맛있다 하신다. 가격은 말씀드리지 않았다. 곧이어 식구들이 호기심으로 한 알 두 알 먹기 시작했다. 맛있단다. 그도 한 알 입에 넣고 지그시 깨물어 봤다.


진한 향과 깊은 맛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런 <쥐뿔!!!>. 그냥 포도 맛이었다. 옆 접시에 있던 한 박스에 만 오천 원 주고 샀던, 일반 포도와 색깔만 다를 뿐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지만, 비싼 것도 비지 떡 일 수 있다.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리고 며칠 뒤 자정이 될 때까지 자료집 및 책 두 권과 씨름을 끝낸 그가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뭔가 인센티브를 주고 싶었다. 이럴 때 술 한 잔이 최고다. 소주 한 병 사 올까 하다가 선물 받은 양주가 있기에, (아까워서) 잠시 망설이다가 뚜껑을 땄다.


그는 비록 샤인 머스캣이라는 포도로부터 기만 비슷한 것을 당했지만, 얼음 넣은 글라스에 가득 따른 한 잔의 술에, 캬... 자주 먹는 소맥과는 달랐다. 그 포도에서 느끼지 못한, 향이 진했고 맛이 깊었다.  비싼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살짝 취한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잠들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달 들어 한국 고전으로는 정조 안팎 시대의 연암 박지원과 사암(다산) 정약용의 책을 들추고, 동양고전으로 논어를, 서양철학으론 중세(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훑고 있다. 힘을 내, 내 안에 격(格)을 쌓는데 게을리하지 말자. 자중자애하자.’


넋두리가 계속되었다. ‘값만 비싸고 맛도 제 값 못하는 괴이한 과일이 되지 말자. <마음을 달래려는 술과 담배는 독이고, 게임과 오락은 마취제이지만, 독서는 마음의 양식과 균형감과 지혜를 제공하는 뷔페다>’ 뷔페... 배고프다, 빨리 잠들자. 비싼 술은 힘이 세다.



<샤인 머스캣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평소 단 것과 친하지 않은 내게는 별로였지만... 다른 사람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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