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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Dec 02. 2022

할머니와 고구마

고구마같은 인생

요즘은 김장철이다. 대형마트 같은 곳에 가면 절인 배추와 고춧가루 그리고 갖가지 젓갈 등이 이곳저곳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지금 김장을 하지 않으면 올 겨울을 살아내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다. 


우리 집은 몇 해 전부터 김장을 하지 않는다. 식구들 대부분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끼니(점심과 저녁)를 해결하니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별로 없고, 옛날처럼 김장을 했다가는 김치 냉장고만 채울 뿐이다. 


아침만 해도 토마토 주스와 구운 고구마 한 개, 그리고 제철 과일 한 조각이 전부다. (평일에는 집에서 겨우 아침만 먹는 데 그것마저도...) 만일 북한에서 우리 집 식단을 알기라고 한다면, 그들 말대로 굶주린 남조선 인민의 실상이라는 선전에 이용 당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절대 대외비로 삼고 있다. ㅎㅎㅎ 


최근 전에는 잘 가지 않던 재래시장을 자주 간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나 같은 샐러리맨들이야 그나마 고정된 월급이라도 받지만 자영업들은 하루하루가 고단한 때라, 작은 도움이나 될까 싶어 서다. 가끔 퇴근길에 일용할 양식인 토마토와 고구마를 사기 위해 시내 위, 아래 시장을 훑는다.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시장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참에 가끔 군것질 거리로 삶은 옥수수나 튀김, 떡 등을 사서 지인들과 나누기도 한다. 


얼마 전 성동시장 앞 노점에서 많이 연로해 눈도 좀 어두워 보이는 할머니한테 5천 원 한 장으로 고구마 한 소쿠리를 샀다. 확실히 마트보다 쌌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하는 거였다. 그냥 적선한 것도 아닌 데... 할머니의 넘치는 사례에 도리어 내가 더 민망했다. 


그리고 며칠 지난 주말, 시내에 나간 김에 고구마를 사러 그 시장에 또 들렀다. 물론 그 할머니를 일부러 찾았다. 그날도 역시 할머니는 뭐가 그리 고마운지 연시 인사를 한다. 그날 고구마는 그 전 고구마보다 양이 좀 더 많아 보였다. 거의 떨이 수준이었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요즘 고구마 값이 내렸나 보다 싶었다. 


귀가해 고구마를 건네고 잠깐 낮잠을 자고 나니 아내가 묻는다. 고구마를 어디서 샀는지. 그래서 전에 샀던 그 할머니한테서 샀다고 하니, 말을 에두른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내가 사 온 고구마들이 많이 상했고 맛도 이상하다고 한다. 그 말에 살짝 할머니한테 서운했으나 딱 거기 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할머니가 일부러 불량 고구마를 싸게, 팔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절대 안 하기로 했다. 연로한 나이 탓으로 인한 심신 미약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때 수년 전, 대형마트에서 삼겹살 한 팩 때문에 마트의 정육 담당자에게 전화해 따졌던 기억이 불현듯 났다. 그 해 어느 날 오후, 먹거리를 사러 간 그 대형마트에는 주말이란 그런지 외지에서 놀러 온 많은 청춘들로 북적거렸다. 주로 펜션 객으로 보이는 그들에게 당연히 술과 고기 등이 인기를 끌었다. 


우리도 아주 맛있게 보이는 포장된 삼겹살을 한 팩을 샀는데, 제대로 낚였다. 보기 그럴싸한 맨 위 고기 밑에 깔린 고기는, 집에서 뜯어보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삼겹살에 비계는 당연한 거지만 깔린 고기는 비계가 90% 이상이 되어 보였다. 삼겹살이 아니란 그냥 비계 일 겹살이 더 옳은 표현이었다. 


아마 정육 담당자들은 주말 뜨내기손님들한테 불량 삼겹살을 팔아 치울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고기 한 팩 가지고 까탈스럽게 굴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맘을 고쳐먹었다. 그냥 넘어가면 경주 사람들을 다 욕 먹이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였으니 깐, 그런 컴플레인은 일도, 수고도 아니었다. 


어렵사리 정육 책임자와 전화 연결이 되어 ‘따따따’ 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얄팍한 상술의 시정을 요구하자, 책임자는 꿀 먹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수가 아니라는 증거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결국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해, 괘씸했지만 딱 거기서 모든 상황을 끝냈다. 


그 일이 있은 후 씁쓸했다. 먹거리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그때부터 뭘 사도 적당한 양만 구매했고 그럴싸하게 포장된 거나 1+1 같은 건, 되도록 사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새옹지마? 좋지 않은 일이 도리어 나중에는 그것이 좋은 습관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할머니 고구마 건으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들었다. 나도 살면서 내 말과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이해와 괘씸’의 기로에 섰을 때, 이해는 못 받더라도 최소 괘씸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늘 스스로를 살피고 의로움에 의해 일상적으로 내 내면에 쌓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나이에, 늦은 밤 인문학 강의실을 들락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기운은 억지로 조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송나라에, 자기 밭에서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 싹을 일일이 뽑아 올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어!’라고 말하자 그 아들이 깜짝 놀라 밭으로 달려 가보니 싹들은 이미 다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늘 ‘바르고자 애쓰고 부끄럽지 않도록 처신’하고자 스스로를 가꾸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거나, 누군가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늘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구마는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도 남에게 고구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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