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철 Francis Jun 05. 2022

손에 망치를 쥐면,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Color Bath Effect에 대해 주절주절

컬러 배스 효과 (Color Bath Effect)라는 게 있다. 배스가 목욕이라는 뜻이므로 ‘색으로 씻긴다’, 의역하면 ‘색을 입힌다’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한 가지 색깔에 집중하면 그 색을 가진 물건이, 상대적으로 자주 눈에 띄는 현상이다. 어떤 것 하나에 관심을 가지면 거기에 몰두해,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이런 효과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배웠다. 당시 국내 유일한 실내 스케이트장이 학교에서 멀지 않은 동대문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빙판 위를 달릴 수 있게 되면서, 한 여름 인도(길)가 얼음판이면 좋겠다는 치기 어린 만화적 상상을 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 수영을 배울 때는 케빈 코스트너의 워터월드(Water World)를 꿈꾸기도 했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얼마 전 차를 바꿨다. 그런데 그 기종의 차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전국 어딜 가도 누구 말대로 ‘3초 차’다. -오고 가는 길에 3초마다 보인다. 그만큼 흔하다는 말- 최근에 그 차종의 판매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무언가와 관계를 가지면, 자꾸 그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더 잘 보인다.


책 읽기도 그런 것 같다. 어릴 땐 책 한 권을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소리 내어 읽곤 했다. 누군가가 이 방식을 아브라함 링컨 독서법이라 가르쳐 준 덕택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읽지 않는다. 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들은  필요한 것만을 빨리 읽고 정리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이것도 이 효과의 연장선상에 있다.


만남은 어떤가. 처음 만난 사람과 하는 인사말.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립 서비스다. 상대에 대해 뭘 안다고? 평소 아는 사람을 만나도 늘 반가운 사람만 만나는 게 아닌데. 그래서 우리는 유유상종. 끼리끼리 만나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는 거다. 찾을 수 없으면 입히는 거다. 그래야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대화 역시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야기 혹은 하나마나한 말이나 이상한 선문답도 황당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툭 던질 때, 참 곤혹스럽다. 그 말로 서로 간에 섬(island)을 만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색이, 둘 사이에 이을 수 없는 섬을 만들고 마는 것이다. 나는 요즘 하루 열 마디도 못하고, 아니 안 하고 산다. 몇 마디 한다 해도 공허한 말만 허공에 던지고 만다. 그러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해보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좋아하는 색깔에 집중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관심이 옅다. 망치는 누구의 손에 쥐어진 건지 모를 일이다. 나일 수도 있고 상대일 수도 있다. 아니면 둘 다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못(nail) 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원하는 생각만 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그러나 망치의 용도가 못을 박기도 하지만, 부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 안 될 일이다.


박은 못은 망치의 빠루로 (망치의 뒤쪽에 있는 부분) 뺄 수 있다. 하지만 망치로 부순 것은 다시 회복시킬 수 없다. 스스로 가둔 것은 스스로 풀 수 있다. 미우면 상대의 좋은 점을 의식적으로 보려고 하면 된다. 하지만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경솔한 짓은 없다. 삶이란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아니, 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도 그렇다. 나는 이런 색, 톤, 향을 좋아한다> - 경주 분향사 뜰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초 여름밤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